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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전 연인은 나의 인스타 친구

인스타그램 속 어떤 인연들

by 김승

첫 회사에 들어가고 힘들던 시기에 인스타그램을 만들었다. 회사에서 힘든 부분을 딱히 털어놓을 곳도 없었고, 자유롭게 글을 쓰고 싶어서였다. 인스타그램은 글보다 사진을 위한 매체에 가깝지만, 어쨌거나 당시에는 남들도 많이 하길래 별생각 없이 시작했다. 주변에는 알리지 않고 새벽마다 짧은 글을 남겼다. 쓰다 보니 팔로우하는 이들도 늘어났고, 댓글도 달리는 그 광경이 재밌었다.


팔로우가 늘었다는 알림이 오면 기쁘다. 물론 여전히 광고 계정이 팔로우해서 신고하고 차단할 때가 많지만, 누군가 팔로우를 해준다는 건 기쁜 일이다. 어떤 이들이 나를 팔로우한다는 특징 같은 건 없지만, 가끔 두 계정이 나란히 팔로우를 해줄 때가 있다. 피드만 봐도 단숨에 연인임을 알 수 있는 두 계정. 아마 누군가가 먼저 알고, 알려줘서 다른 누군가가 팔로우했을 확률이 높을 거다.


나와 팔로우하고 있는 이들 대부분은 나와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이다. 연인 사이인 이들은 자신들의 행복한 시절을 피드에 기록한다. 결혼 소식이 들려와서 축하한다는 댓글을 달게 하는 계정도 있고, 어느 순간부터 뜸해지더니 아마도 이별한 것으로 예상되는 계정도 있다. 누군가의 피드로 근황을 추측하는 일에는 제법 상상력이 필요하다. 어차피 나와 닿지 못할 타인이지만, 최대한 긍정적으로 상상해보려고 한다.


두 사람의 피드에 이제 서로의 얼굴이 올라오진 않는, 헤어진 두 사람의 계정을 보게 될 때도 있다. 제삼자 입장에서 이별의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이별 후의 풍경을 바라보는 건 설명 못할 기분을 들게 한다. 이별한 당사자들은 서로의 뒷이야기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두 사람의 계정을 모두 팔로우한 나는 이들의 이별 후 일상에 대해 피드로 보게 된다. 굳이 각 잡고 관찰하지 않아도, 피드를 넘기면서 한 장씩 보이는 사진들. 인스타그램에 우울한 이야기는 많지 않으므로, 이별 후에도 대부분은 잘 지내는 듯 보인다.


인스타그램에서 진짜 감정을 목격하는 건 쉽지 않다. 아니, 진짜 감정을 보아도 그걸 진짜라고 믿기가 쉽지 않다. 누군가 자신의 모든 걸 벗어던지고 날 것으로 말을 해도, 모든 것이 꾸며진 이 공간 안에서는 살가죽을 벗겨도 그걸 그대로 믿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아무리 포장해도 그 안에 진심이 묻어나게 되어있다. 너무 과한 포장은 숨기고 싶은 부분을 보여주고, 날 것인 척 하지만 결국 가리지 못한 부분이 드러나기도 한다. 사랑부터 일상까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이 묻어나는 건 사실이니까. 공허해 보이는 사진과 글귀에도 자신의 흔적은 묻어난다.


공개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고 관찰하는 이 공간에서 사랑과 이별 또한 쉽게 드러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그걸 드러내는 이들이 존재하니까. 그러므로 나는 누군가의 사랑과 이별을 앞으로도 여러 번 바라보게 될 거다. 가깝지 않지만 마치 가까운 듯 그들의 피드를 볼 수 있고, 멀지만 멀지 않은 듯 그들의 일상을 알 수 있다. 무서운 일인 동시에 편리한 일이다. 일상의 일부를 알 수 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섭고 편리하다. 그게 싫어서 인스타그램을 종료하고, 그게 좋아서 다시 실행한다. 실행과 종료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가운데,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사랑과 이별을 기록한다. 쓸데없는 일을 잘 기억하는 내게, 나와 상관없는 사랑과 이별에 대한 기억이 늘어난다.



*커버 이미지 : 클로드 모네 '아르장퇴유에서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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