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에게 어떤 사람인가요
A와의 카톡창을 연다. 스크롤을 위로 올려 그동안 나눴던 대화를 본다. 이전 대화를 살펴보는 경우는 두 가지다. 좋았던 대화라서 다시 살피고 싶거나, 이 관계가 맞는지 의심하게 되어서. 이번에도 후자다. 행복한 사건은 삶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다. 이 관계가 맞는 건가. 생각이 많은 내 탓일까.
A는 나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 A는 자신의 이야기만 할 뿐이다. A의 말이 물음표로 끝나는 순간들이 있다.
"혹시 이것 좀 도와줄 수 있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건 뿌듯한 일이다. 그런데 도움이 필요할 때만 찾아오는 이에게 늘 호의적이기는 쉽지 않다. 나는 성인군자가 아니라, 평균치보다도 못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 불과하니까.
'나에 대해 어떤 걸 알고 있어?'
문득, 묻고 싶어 졌다. 분명 관계는 이어져오고 있는데, 필요할 때만 찾는 이 사람은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알고 지낸 지 꽤 되었는데 자신의 부탁과 관련해서만 물을 뿐, 나에 대해 묻지 않는 사람. 길에서 누군가를 붙잡고 잠깐 하소연을 해도, 나에 대해 A보다 많이 알게 될 것만 같다. 이런 상상을 하게 하는 게, 관계를 돌아보게 된 이유다. 왜 나는 이런 상상을 하고 의심을 해야 할까. 알고 지낸 시간이 길다고 해서 가깝다는 뜻은 아니다. 그걸 A는 알고 있을까.
"혹시 이것 좀 도와줄 수 있어?"
A는 알고 있을 거다. 내가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라는 걸. 부탁을 들어주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만약 필요로 하는 걸 내가 들어주지 못한다면, 이 관계는 바로 끝나는 게 아닐까. A에게 나는 필요한 사람이므로, 필요성이 사라지면 이 관계는 끝인 게 당연한 거니까.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면 좋은 거죠.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오직 필요가 목적이 되는 순간, 그 관계가 이어질 수 있을까. 내 존재를 '필요'가 아니라 '호기심'으로 확인하고 싶은 건 당연한 욕심 아닐까. 나는 궁금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필요한 이유가 '궁금해서' 였으면 좋겠다. 이런 고민의 시간을 보내고 끝날 관계에 기력을 쓰는 게 지친다.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가 당신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궁금해서라는 사실이 가장 싫다.
*커버 이미지 : 에드바르 뭉크 '생의 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