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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Dec 15. 2020

네가 결혼하면 우리 같이 쓰는 넷플릭스 아이디는?

넷플릭스 아이디를 공유하는 사람

"넷플릭스 같이 쓰실래요?"


처음 넷플릭스를 쓰게 된 건 독일 여행이 끝난 뒤였다. 독일 여행 때 만난 친구가 같이 아이디를 쓰지 않겠냐고 해서 넷플릭스를 사용하게 되었다. 당시에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는 것도 결정적인 이유였다. 매일 연락하는 친구는 아니었지만, 함께 넷플릭스 아이디를 쓰게 되었다. 다행히도 한 아이디여도 서로 다른 계정처럼 사용할 수 있는 덕분에 프라이버시가 지켜지는 느낌이었다. 개인의 재생 목록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고, 나의 재생 목록에는 '도로헤도로'나 '원펀맨' 같은 애니메이션이 길티플레져처럼 자리 잡고 있다.


몇 달 동안 넷플릭스 구독자로 지내다가, 친구가 이제 더 이상 넷플릭스를 안 쓸 것 같다고 해서 나도 자연스럽게 넷플릭스와 떨어져 지냈다. 그 사이에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코엔 형제의 '카우보이의 노래'나 수잔 비에르의 '버드 박스' 같은 작품이 나와서 궁금했으나, 언젠가는 다시 넷플릭스를 쓰지 않을 라는 생각으로 미뤄뒀다. 어떤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을 애써 잊고, 다른 영화들을 찾아보았다.


"넷플릭스 혼자 써?"


8년 정도 된 친구에게 넷플릭스를 혼자 쓰는지 물어보았다. 친구는 넷플릭스뿐만 아니라 왓챠 플레이, 웨이브 등 다양한 OTT 서비스를 구독 중이었다. 평소에 서로에게 영화부터 드라마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추천해주는데, OTT를 함께 사용할 사람을 구하는 서비스도 생긴 만큼 OTT 서비스를 혼자 사용하는지 궁금했다. 친구는 넷플릭스를 혼자 사용하고 있다고 했고, 자연스럽게 나도 합류하게 되었다. 그렇게 둘이 함께 넷플릭스를 사용하게 되었다. 보고 싶지만 미뤘던 마틴 스콜세지의 '아이리시맨'을 볼 수 있어서 기뻤다. 


사용에 대한 규칙을 따로 정할 필요도 없었다. 서로 자신의 이름이 적힌 아이콘을 누른 뒤 핀번호를 누르고 각자 보고 싶은 것을 보면 되는 거였다. 넷플릭스 아이디를 함께 쓰기로 한 이후로 절반의 요금을 친구 계좌로 자동이체 등록했다. 이젠 넷플릭스가 내게 당연한 서비스가 되었고, 매달 출금 내역에 '넷플릭스'라는 계좌 이체 내역을 볼 때마다 실감한다. 아, 나는 이 서비스를 친구랑 같이 쓰고 있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언제까지 함께 아이디를 쓸 수 있을까?'


넷플릭스가 지금처럼 공격적으로 콘텐츠를 늘린다면 넷플릭스에 볼 콘텐츠가 없을 일은 없을 거다. 오히려 볼 게 너무 많아서 고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애로사항일 정도니까. 다만 어떤 서비스를 공유하는 건 생각보다 사적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뢰가 없으면 깨지기도 쉽다. 만약에 결제 관리가 잘못되거나, 계좌 이체해주기로 한 날짜가 다르기라도 하면,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괜히 불편하다. 서로 별 이슈 없이 지나가기를 바랄 뿐.


친구가 당장 결혼을 계획하고 있지는 않지만, 혹시라도 결혼을 계획한다면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야 하지 않을까. 너와 결혼할 그분이 불편하게 여길 수도 있으니, 이젠 따로 사용하기로 할까? 오히려 이렇게 생각하는 게 더 촌스러운 생각일까. 내가 과하게 하는 생각인 걸까. 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공유한다는 건, 당사자들이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제3자에게는 크게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이 많아서 탈이다.


당장 일어날 일은 아닐 거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친구와 싸울 일은 거의 없다는 거다. 여태까지 이어온 인연이 그걸 증명해주고 있기도 하고. 만약에 싸우더라도 넷플릭스를 보다 보면 화해하고 싶다는 생각부터 들 것 같다. 애초에 서로 믿지 않았으면 아이디를 공유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모르는 사람과도 넷플릭스 아이디를 공유하는 시대이지만, 우리는 넷플릭스를 위해 만난 사이가 아니니까. 우정을 확인하는 순간에, 넷플릭스가 추가되었을 뿐.


넷플릭스가 매달 며칠에 결제되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지정한 날짜에 친구에게 계좌 이체를 해주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체 내역에 친구의 계좌 번호가 없으면 무슨 기분이 들까. 너의 새로운 연인이 이성친구와 넷플릭스 아이디 공유를 싫어한다고 말한다면, 나는 아마 웃으면서 알겠다고 답할 거다. 넷플릭스 아이디 공유의 시간보다 훨씬 더 길게 볼 인연을 생각하면서.



*커버 이미지 : 영화 '결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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