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1 day 1 scen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 Dec 19. 2020

옛날 영화 잡지를 선물 받다

영화 잡지 '키노'를 보다

지인에게서 옛날 잡지를 선물 받았다. 우연히 어떤 도서 판매 현장에서 잡지를 샀다고 한다. 내가 영화를 좋아한다는 걸 기억해서 챙겨준 잡지였고, 잡지의 이름은 '키노'다. 표지는 영화 '아메리칸 뷰티'였고, 특집 기사여서 그런지 가장 크게 적힌 건 로베르 브레송 감독이었다. '아메리칸 뷰티'는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한 편이고, 로베르 브레송은 '언젠가 봐야 하는 고전' 리스크에 올려둔 감독 중 한 명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에 대한 글을 읽는 걸 별로 안 좋아하기에, 내가 본 영화에 대한 글만 읽어본다. 


키노 안에는 여러 웹사이트를 찾아봐도 잘 나오지 않던 정보도 나와있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 시대의 취재와 인터넷이 활성화된 시대의 취재도 다를 거다. 키노에 대해 내가 아는 거라면, 정성일 평론가가 편집장이었다는 잡지라는 거다. 요즘도 영화를 보고 나면 정성일 평론가가 그 영화에 대해 쓴 글이 있는지 찾아본다. 그의 의견에 늘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은 같은 영화를 어떻게 다르게 보는지가 궁금하다. 영화평론가는 많지만, 그처럼 영화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보기 드무니까. 정성일 평론가가 앞으로 영화를 안 보고, 내가 앞으로 죽을 때까지 하루에 3~4편씩 영화를 본다고 해도 그가 여태까지 본 영화 편 수에는 절반도 미치지 못할 거다. 나는 죽기 전에 몇 편이나 볼 수 있을까.


최근에 '필로'라는 오프라인 영화 잡지가 나와서 보고 있다. 정성일 평론가도 필진 중 한 명이다. 몇 권을 샀지만, 정작 다 읽지를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못 본 영화가 절반 이상이기 때문이다. 영화 잡지를 보기 위해서는 일단 영화를 부지런히 봐야 한다. 


지금은 온라인에 영화에 대한 정보가 넘쳐나지만,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을 생각해보면 영화에 대해 지금처럼 많이 알기도 힘들었을 거다. 지금이야 포털 사이트에 영화 제목만 쳐도 줄거리와 출연진, 스텝 명단을 알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런 정보도 없었을 거다. 오히려 정보가 적기에 좋기도 했을 거다. 영화 제목이나 포스터만 보고도 볼 생각을 하는 게 선택에 있어서 편할 테니까. 물론 만족스럽지 않은 영화를 볼 확률도 높겠지만, 너무 많은 정보 앞에서 보기도 전에 포기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비디오 가게 알바생의 추천이나 지인의 추천, 오프라인 잡지의 평가에 의존해서 영화를 보는 패턴은 지금도 많이 다르지 않다. 영화평론가가 아니어도 영화를 많이 본 이들이 각종 플랫폼에 넘쳐나고, 주변 사람들은 극장에서부터 OTT까지 다양한 경로로 본 영화를 추천해주고, 온라인에는 영화에 대한 별점과 리뷰가 쏟아진다. 넷플릭스나 왓챠플레이 등 내가 본 영상과 별점 등을 토대로 알고리즘을 통해 영화를 추천해주기도 한다. 알고리즘이 추천해준 영화가 재밌을 때는 생각이 많아진다. 나의 취향이 읽힌다는 건 편리한 동시에 무서운 일이니까.


'영화'와 '잡지', 둘 다 내겐 로망에 가까운 분야다. 언젠가는 어떤 형태로든, 일회성으로 독립 출간을 해서라도 영화 잡지를 만들어보고 싶다. 그때쯤에는 몇 편의 영화를 보았을 거며, 내가 영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을지 궁금하다. 훗날 누군가에게는 '옛날 영화 잡지'로 불릴, 그러나 꽤 볼만한 재미가 있는 잡지를 남긴다면 그건 의미 있는 일일 거다.



*커버 이미지 : 영화 '아메리칸 뷰티'

매거진의 이전글 재택근무 시대의 출근 풍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