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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Dec 18. 2020

재택근무 시대의 출근 풍경

코로나, 재택 혹은 출근

코로나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재택근무를 일주일에 몇 번씩 하고 있다. 이직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코로나가 시작된지라,  회사에서 일주일 내내 출근한 기간이 한두 달 밖에 안 된다. 집에서 회사까지 한 시간 정도 걸리고, 환승하는 역에서 부지런히 걸어야 하는데 그런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만으로도 재택근무는 편하다. 업무 시작하기 몇 분 전에 알람 소리에 일어나서 컴퓨터 앞에 앉으면 되니까. 재택근무 때는 움직임 자체가 줄어서, 몸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하루를 보낸다.


출퇴근이 거의 유일한 외출이 되었다. 계절이 바뀐 것도, 비나 눈이 오는 것도 출근을 해서야 확인할 수 있다. 코로나 이후로 사라진 가게들도 많다. 집에 머물동안에도 많은 것들이 사라져 간다. 밖에서도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나의 마음 안에서도 많은 게 사라진다. 코로나가 없었다면 했었을 것들이 사라지고, 코로나가 사라진 후를 상상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나의 안에서도 밖에서도 많은 게 사라지는 가운데, 늘어나는 거라고는 확진자 수와 근심뿐이다. 


며칠 만에 출근을 한다. 올해 초 출근길에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하지만, 요즘에는 확실히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 재택근무가 활성화되었다는 뜻일까. 여전히 재택근무를 하지 않는 회사도 있다고 들었다. 출근길에 지하철에 앉을자리를 볼 수 있다는 건 드문 일이다. 평소에 지하철에 타면 운동하자는 마음으로 자리가 있어도 앉지 않고 서 있는 편이다. 미련한 생각일 수도 있겠으나, 요즘처럼 부피가 큰 옷을 입었을 때는 앉는 게 더 불편하다. 사람과 사람이 너무 가까운 게 위험하게 느껴지는 시기이기도 하고. 아마 코로나가 끝나도 조심하는 습관은 몸에 남아있을 것 같다.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은 여전한데, 사람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출근하는 시간을 정할 수 있고, 나는 이른 시간에 출근하는 편이다. 일찍 퇴근하고 저녁을 편하게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별로 없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기분도 좋다. 같은 시간대에 출근하는 사람은 많지 않고, 코로나 이후에는 우리 층에서 제일 먼저 도착할 때도 많다. 출근하는 사람이 많이 줄어들었음을 느낀다. 옆팀에 출근하는 사람이 없을 때도 있다. 코로나가 끝나고 매일매일 모든 직원들이 다시 출근하기 시작하면, 그때도 다시 적응이 필요할 것만 같다. 


출근했음에도 불구하고 알람이 울리는 이들이 있다. 아마 재택근무에 맞춰서 설정한 알람일 거다. 의도치 않게 누군가의 알람 소리를 들으면서, 그 사람이 재택근무 때 몇 시에 일어나는지 가늠한다. 나보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도 있고, 나보다 늦게 일어나는 사람도 있다. 타인의 알람 소리를 들으면 내 알람도 혹시 울리지 않을까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타인의 실수를 보고 내가 실수할 가능성을 가늠하는 일은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회사에서 따로 식사를 제공하지 않지만, 코로나가 심해진 이유는 도시락을 제공해주고 있다. 각자 자리에 앉아서 도시락을 먹는다. 밖에 나가는 걸 최소화하고, 모여있지 말라는 뜻일 거다. 그럼에도 중요한 일은 대부분 얼굴을 보며 회의실에서 이뤄진다. 자리에서 식사를 하다 보니, 점심시간도 업무 시간이 된 기분이다. 회사에서 제일 빠르게 밥을 먹는 사람이지만, 괜히 밥을 천천히 먹어보고, 양치질도 천천히 해본다. 나의 점심시간을 온전히 누리고 싶다. 


조용한 사무실에서 퇴근한다. 출퇴근 시간이 다르기에, 다른 이들은 일하고 있는데 나만 빠져나오는 게 괜히 눈치 보인다. 나의 당연한 권리인데 눈치를 볼 때가 많다. 권리를 권리답게 누려야 하는 법보다 눈치를 더 잘 알려주는 게 세상이니까. 요즘은 그래도 제법 뻔뻔해져서, 아니 당연한 권리이므로 정해진 시간이 되면 바로 퇴근을 한다.


퇴근 시간 엘리베이터는 내려가다 보면 같은 건물 유치원의 아이들이 우르르 타는데, 코로나 때문인지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생긴다. 존재만으로 에너지를 줄 수 있다는 건 축복에 가까운 일이다. 나도 아이였을 때, 그런 에너지를 누군가에게 주었던 적이 있을까.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손소독제를 듬뿍 손에 바른다. 엘리베이터 안 전광판에 '윈도우 정품 인증 필요' 메시지가 떠있다. 보안을 늘 강조하는 회사 건물에서 이런 풍경을 목격하는 게 재밌다. 담당자는 저 메시지가 엘리베이터에 탄 이들에게 보인다는 걸 알고 있을까.


몸에 열이 많아서 출퇴근길마다 마스크 때문에 힘들었는데, 추워지니 마스크가 따뜻하게 느껴진다. 마스크를 뚫고 입김이 나온다. 재택근무를 할 때는 면도도 안 하고 있는데, 출근하는 날에는 마스크를 쓰더라도 면도를 한다. 트집 잡힐 거리를 만들어서 좋을 게 없다. 발밑으로 땅이 언 게 느껴진다. 옆으로 지나가는 자전거를 탄 이들이 위태롭게 느껴진다.


확진자가 천 명이 넘었고, 눈도 왔다. 연말은 지금과 다름없이 조용할 거다. 크리스마스도 새해 첫날도 금요일이라 기분이 좋다. 쉬는 날이라고 딱히 무엇인가 하지 않더라도, 쉬는 건 쉬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다. 코로나가 끝나면 재택근무도 완전하게 사라질까. 코로나 이후가 궁금하지만, 코로나 이후가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을 만큼 여전히 모든 건 심각하다. 몇 번의 재택근무 뒤에 코로나가 잠잠해질까. 내년에도 코로나가 계속될 거라는 것 이외에는 무엇 하나 예상하기 힘든 연말의 퇴근길이다.



*커버 이미지 : 에드워드 호퍼 'chair c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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