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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Dec 27. 2020

왜 내부고발자가 사과를 해야 하나요?

군대의 내부고발자

군 생활을 하면서 물리적인 폭력을 당한 적은 없다. 폭언을 당한 적은 있지만, 맞은 적 없다는 것에 안도해야 하는 상황이 싫었다. '나 때는 엄청 맞았는데, 요즘 군대는 너무 편해'라는 식으로 군대에서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발언을 하는 모든 이들을 증오한다.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되지 않는다. 


"너는 그래도 편할 때 군대 왔다."


자대에 오고 나서 얼마 안 되어서 선임과 불침번을 하게 되면서 듣게 된 말이다. 선임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취침 소등 후에 후임들을 화장실로 따로 불러내서 얼차려를 주고 때리는 게 당연했다고 한다. 만약에 몇 달 전에 입대했다면, 나도 밤마다 맞는 게 일상이 되었을 거다. 최악을 면했다는 것에 안심해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군 생활은 지긋지긋하다.


"내 동기 중에 A라고 있잖아. 걔가 다 꼰질렀거든."


A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옆에 있는 선임을 비롯해서 A의 동기들은 하나 같이 밝은 캐릭터들이었다. 그에 비해 A는 유독 조용해 보였다. 


"부대 뒤집어지고, 영창 간 사람도 있고 난리였지. A는 분대 옮기고."


선임은 점심 메뉴를 물어보듯 자연스럽게 당시 상황에 대해 말했다. 당시 A와 같은 분대에 있던 선임들은 영창을 가거나, 타 부대로 가거나, 분대를 이동하는 등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가장 부조리가 심한 분대였다고 한다. 


"다 끝나고 나서, A가 돌아다니면서 선임들한테 다 사과하고 그랬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매일 밤마다 맞아도 참아야 하는 게 이 곳의 룰이라면 그걸 견뎌야 하는 건가.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까라면 까'라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 부조리를 합리화하는 짧은 말, 까라면 까.


"A가 그랬으면 안 됐지. 지금 애들 봐라. 다 풀어져가지고."


자신들의 아래 세대에 만족하는 이들을 보는 건 군대에서나 사회에서나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의 과거를 미화하고, 자신이 했던 고생을 더욱 과장하는 건 사람들의 본능인 걸까. 자신이 고생했으니 남들도 고생해야 한다는 생각이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걸 막는다. 군인의 월급 인상, 핸드폰 사용 허가, 평일 외출 허용 등 군인 복지와 관련해서 '편하면 그게 군인이냐'라고 외치는 이들을 보면, 그런 말 하는 이들을 지금 당장 고통의 무간지옥 안에 던져놓고 싶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불침번이 끝나고 나서도, 생활관을 돌아다니면서 선임들에게 사과를 하고 다녔을 A의 모습이 자꾸 상상되었다. 복수를 꿈꾸게 할 만큼 견디기 힘들었던 폭언과 숨 쉬듯 많은 사과를 마친 후에, 나의 군 생활도 끝이 났다. 


지금도 내가 가장 많이 떠올리는 장면은 휴가 나왔을 때의 풍경이나 훈련 당시의 모습이 아니라, A가 사과를 하는 모습이다. 직접 본 장면도 아니지만, 그 장면이 내게는 어떤 상징처럼 느껴졌다. 내부고발자가 사과해야만 하는 광경. 내부고발자를 보호해주지 않고, 집단의 부조리는 잠시만 사라졌다가 결국 다시 돌아오는 악순환. 


"집단의 부조리를 목격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직을 준비했을 당시 면접을 준비하며 생각했던 예상 질문 중 하나다. 정의로워 보이는 말을 하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다. 군대에서 폭력 근절을 아무리 말해도, 군대 안에 폭력이 존재한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군대 안에서나 밖에서나, 폭력을 합리화하는 이들은 넘쳐난다. 


"내부고발자를 어떻게 보호해주실 건가요?"


과연 당당하게 역으로 물을 수 있을까. 용기를 내는 상상보다 A의 모습을 떠올리는 날이 더 많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살기 위해, 더 나아지기 위해 그런 말을 꺼내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말을 해서, 숨을 쉬어서, 살아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커버 이미지 : 에드바르 뭉크 'Sick Mood at Sunset, Desp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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