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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Dec 27. 2020

메모는 늘어나는데 정리를 안 하는

쌓여가는 메모와 미뤄지는 정리

메모를 자주 한다. 길을 걷다가도 무엇인가 생각나면 '컬러노트' 앱이나 '에버노트' 앱에 메모를 한다. 언젠가 글감이 되겠다 싶은 내용들을 메모한다. 나중에 보면 쓸모없어서 지우게 되는 시원찮은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일단 적어본다. 글감은 늘 모자라고, 힌트가 되는 그 어떤 짧은 단어라도 내게는 도움이 되니까. 


메모장에 꽤 많은 메모가 쌓였다. 그런데 정리는 메모만큼 부지런하지 않다. 메모한 내용을 열심히 정리를 해야, 메모를 글로 발전시킬 텐데 아직까지 제대로 정리를 못했다. 메모하는 앱들끼리 겹치는 메모도 있을 수 있고, 카카오톡에 보내 둔 메모도 있다. 언젠가 메모들을 모두 모아놓고 보면 큰 줄기가 될 거라고 예상하며 매일 메모를 하지만, 정리는 계속해서 미루고 있다. 메모와 정리가 함께 가면 좋을 텐데, 정리는 계속 미룬 채 메모만 쌓여가고 있다.


매일 짧게라도 글을 쓰려고 하다 보니, 메모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다. 책상 앞에 앉았다고 해서 글이 써지는 건 아니니까. 내가 해둔 메모 목록을 쭉 살핀다. 몇 문단 정도 발전시킬 수 있는 메모를 발견하면 든든해진다. 가장 기쁜 순간은 애초에 메모할 때부터 길게 메모하는 경우다. 거의 글의 골격 수준으로 긴 메모를 한 날에는 하루에 써야 할 글의 할당량을 채운 기분이다.


메모하지 못해서 아쉬운 순간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샤워'와 '꿈'이다. 샤워를 하고 있을 때 메모할 만한 내용이 떠올라도 '샤워 다 마치고 적자'라는 식으로 방심한다. 샤워를 마치고, 몸의 물기를 닦고, 로션을 바르고 하다 보면 어느새 방금까지 생각했던 내용이 기억이 안 난다. 샤워하는 동안 물에 휩쓸려서 기억이 사라진 기분이다. 샤워할 때 나는 기억들은 하나 같이, 물에 잘 녹는다.


꿈의 내용을 메모하지 못해서 아쉬울 때가 많다. 꿈의 경우에는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켜서 적으려고 하는 편인데, 그럼에도 잘 기억이 안 난다. 평소에 꿈도 잘 안 꾸는 편이라, 꿈을 꾸고 나면 악착 같이 꿈의 내용을 적으려고 하지만 눈을 뜨면 꿈도 사라진다. 만약 꿈에서 보았던 내용을 그대로 메모할 수 있다면, 신박한 글을 몇 편은 쓰지 않았을까. 글이 안 써지니 꿈 탓도 해본다. 로또 번호 같은 건 안 나와도, 꽤나 흥미로운 전개를 자랑하는 꿈을 꿀 때는 있다. 


가장 오래 쓴 메모 앱을 확인해보니, 가장 처음 적어둔 메모가 16년이다. 4년 동안 방치해둔 메모는, 메모할 당시의 맥락을 잃은 경우도 많다. 나중에 봐도 기억할 거라고 방심하고, 맥락을 자세히 안 쓰고 키워드 정도만 남겨둔 메모들도 있다. 언젠가 기억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남겨두기도 하지만, 이런 메모는 대부분 몇 년 동안 안 쓰다가 결국 버린 잡동사니처럼 삭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몇 달 전에 책상 정리할 때는 군대에서 열심히 메모한 노트도 발견했다. 당시에는 열심히 적었겠지만, 가뜩이나 악필인 내 글씨를 알아보는 것도 힘들다. 펜으로 쓴 글씨가 번지기까지 해서, 몇 글자가 알아볼까 싶다. 핸드폰에 적어둔 메모라면 많이 수고스러운 건 아니지만, 오프라인 메모는 정리하는 게 몇 배는 번거롭게 느껴진다. 내가 가진 습관 대부분이 온라인에 최적화되어있는데, 메모 또한 마찬가지다.  


올해가 며칠 안 남았는데, 메모를 정리할 수 있을까. 오늘도 몇 개의 메모를 추가했지만, 정리는 따로 하지 않았다. 미래의 내게 구원까지는 아니어도 힌트 정도는 될 수 있는, 그런 메모를 발견하기를 바라며 정리를 해봐야겠다.



*커버 이미지 : 키스 해링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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