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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Dec 28. 2020

다시 긴 글을 쓸 수 있을까

글을 길게 쓰는 능력

2020년이 얼마 안 남았다. 해가 뜬 시간은 짧아지고, 어둠이 머무는 시간은 길어졌다. 한 해를 돌아보면 내가 보는 것들도 거의 다 짧아졌다. 유튜브의 짧고 흥미로운 영상에 길들여지면서, 조금만 길거나 지루해져도 주저 없이 화면을 빠르게 넘기는 자신을 발견한다. 주로 보는 영상은 대부분 짧고, 글 또한 마찬가지다. 짧은 기사를 읽고, 관심 있는 분야가 아닌 이상 읽는 글들 대부분은 짧다. 장편소설을 읽은 것도 꽤 오래 전이다. 출퇴근 길에 읽는 책들은 주로 단편집이다. 요즘은 기존 단편보다도 더 짧은 분량의 소설을 담은 책들도 꽤 많다. 읽고 보는 것들이 모두 짧아졌다.


그리고 내가 쓰는 글 또한 짧다. 매일 브런치에 쓰는 글이 그나마 긴 편이다.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릴 일이 있으면 최대한 짧게 쓴다. 긴 글을 읽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나조차도 그러니까. 올 한 해 동안 쓴 글들을 살펴본다. 긴 호흡을 가진 글은 거의 없다. 


새해를 앞두고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과연 다시 긴 글을 쓸 수 있을까. 아니, 긴 글을 써본 적은 있던가. 학부 때 수업 과제로 꾸역꾸역 쓴 원고지 80매 분량의 소설이 내가 쓴 가장 긴 글인 걸까. 굳이 긴 글을 쓸 필요는 없을 거다. 그런데 긴 글을 쓸 수 있는데 짧은 글을 쓰는 것과, 긴 글을 쓸 수 없어서 짧은 글을 쓰는 건 다른 이야기다. 괜한 자존심을 부려본다.


하루에 짧게라도 써서 결국 긴 글을 완성해낸다면, 그건 내게 큰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 시작이라는 게 그렇듯, 엉망이겠지만 나아지긴 할 테니. 내년에는 긴 호흡에 대해 생각해봐야겠다. 모든 게 짧아지고, 짧아진 모든 것들을 보면 괜히 불안해진다. 짧아지다 못해 결국 사라질 것만 같다. 모든 것의 시작은 불안이다. 불안을 안고 긴 호흡으로 무엇인가 써보자. 무엇이 될지 모르지만, 엉망이어도 완주를 꿈꾸며.



*커버 이미지 : 아나 앙케르 'The Artist’s Mother Ane Hedvig Brøndum in the Blue 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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