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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Dec 31. 2020

대의를 위한 희생이 필요하다는 말

그렇게 희생이 필요하면 당신이 하세요

퇴근하고 넷플릭스로 영화 '바디 오브 라이즈'를 봤다. 리들리 스콧의 작품 중 아직 못 본 작품이라 봤고, 흥미롭게 보았다. 영화에는 중동에서 활동 중인 CIA 요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본부에서 지시를 내리는 국장 러셀 크로우가 나온다. 디카프리오는 중동에서 활동하면서 함께 일하는 이들과 정이 들고, 자신 때문에 누군가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 때마다 분노하고 일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


"대의를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해."


희생자가 발생할 때마다 힘들어하는 디카프리오에게 러셀 크로우는 태연하게 말한다. 디카프리오는 화를 내며 '현장이 어떤지도 모르고 앉아서 편하게 일하는 이가 뭘 알겠느냐'라고 말한다. 러셀 크로우는 큰 그림을 그리고, 디카프리오는 최전선에서 그림을 그려나간다. 


이러한 관계를 보여주는 영화는 무척이나 많은 편이고, 러셀 크로우가 말한 대사와 비슷한 맥락의 대사가 등장하는 영화 또한 많다. 영화가 아니어도, 뉴스부터 회사에서까지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대의를 위한 희생. 


대의를 위한 희생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다. 그렇게 희생이 필요하면 본인이 하라고. 큰 그림을 그릴 사람은 대체 불가하고, 최전선에서 희생하는 사람은 대체 가능한가. 그런 생각이 더 위험한 거 아닌가.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귀한데, '대의'라는 이름으로 그걸 잊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말하는 대의가 가진 가치가 도대체 얼마나 큰 것인 건가. 죽음이 당연시되는 수많은 전쟁이 '대의'라는 이름으로 펼쳐지는 가장 대표적인 예일 거다. 


직장에서도 이루고자 하는 성과를 '대의'라고 부르며 직원들에게 희생을 요구하기도 한다. 희생을 요구받는 이들은 대부분 가장 힘없는 이들이다. 대의를 생각할 틈도 없이 하루하루 삶을 꾸려나가는 것만으로도 바쁜 사람들. 희생만큼의 보상이 돌아오지 않고, 성과의 공을 차지하는 건 희생한 이들보다는 희생을 강요한 이들이다. 


대의를 위한 희생을 요구하는 모든 종류의 상황이 불편하다. 자신이 희생할 일이 없을 걸 알고 '대의를 위한 희생'을 요구하는 이들을 볼 때는 분노할 수밖에 없다. 소리 소문 없이 희생당한 이와, 무수히 많은 희생 덕분에 대의 달성의 타이틀을 얻은 이가 함께 하는 세상. 


요즘 애들은 희생정신이 없어, 자기밖에 몰라, 같은 말을 하는 어른이 없어지기를 바란다. 자신을 지키는 건 아주 가치 있는 '대의'니까. 말도 안 되는 명분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풍경은 사라져야만 한다. 



*커버 이미지 : 영화 '바디 오브 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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