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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Jan 03. 2021

2020년 베스트 영화 목록 작성하기 실패

영화의 개봉 연도가 무의미해지는 시대

연말에 되면 각종 베스트 영화 목록을 찾아본다. 영화 목록을 보면서 내가 놓친 영화를 체크해두었다가 뒤늦게라도 챙겨보는 편이다. 시대를 불문하고 고전으로 불리는 영화, 매해 베스트 영화 목록에 올라오는 영화, 내가 보고 싶은 영화까지 다 챙겨보려고 하면 사실상 놓치는 영화가 더 많은 게 당연하다. 특히나 평론가나 영화 관련 매체들이 발표한 베스트 영화 목록은 각종 영화제에서만 상영한 작품도 포함해서인지 넷플릭스, 왓챠 같은 OTT 서비스에서도 보기 힘든 작품들이 많다. 


2020년에도 여러 매체에서 베스트 영화 목록을 발표했다. 올해는 좀 심각하다고 느꼈다. 여기서의 심각함은 나에 대한 심각함이다. 본 영화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올해 개봉한 영화 중에 극장에서 본 영화는 '테넷', 단 한편이다. 그나마 올해 공개된 영화 중에서 챙겨본 영화는 대부분 OTT로 본 작품들이다. '맹크'처럼 넷플릭스로 공개하는 작품이 아닌 이상, 2020년에 공개된 영화 대부분은 챙겨보지 못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서, 올해 내게 인상적이었던 영화들은 하나 같이 2020년과는 꽤 떨어진 과거의 작품들이다. 의무감을 가지고 고전을 보는 걸 너무나 싫어하기에, 시대와 상관없이 최고의 영화로 뽑히는 '시민 케인'도 올해에서야 봤다. 공개된 년도와 상관없이 올해 본 영화 중에 가장 좋았던 작품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아이리시맨'이다. 작년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는데 올해에서야 챙겨보았다. 왓챠의 연말정산 콘텐츠에 의하면 2020년에 내가 처음으로 본 작품은 2013년에 공개된 코엔 형제의 '인사이드 르윈'이다. 올해 극장에서 본 영화 중 가장 좋았던 작품은 1991년에 공개된 장예모 감독의 '홍등'이다. 대한극장에서 장예모 감독 특별전을 해줘서 보았는데, 올해 개봉작인 '테넷'보다도 인상적이었다.


코로나가 아니어도 영화의 표준이 점점 극장에서 OTT로 이동하는 걸 느낀다. 이렇게 된다면 머지않아 영화를 고르는 기준은 극장 상영 여부가 아니라 OTT 업로드 여부가 될 거다. 어떤 영화를 봤는지 물어봤을 때 '못 본 사이에 극장에서 내려갔어'라는 답 대신에 '넷플릭스에 안 올라와 있던데'라는 답이 돌아올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연말 베스트 목록은 그 해 '개봉작'이 아니라 '본 작품'으로 범위를 넓혀야 할지도 모른다. 예전에 본 영화인데 다시 봐서 더 좋아졌을 수도 있고, 뒤늦게 챙겨봤는데 좋은 작품이 있을 수도 있다. 나만 하더라도 올해 극장에서 본 영화가 열 편이 안 된다. 아무리 극장을 좋아해도, 코로나의 위험을 안고 극장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2020년 베스트 영화 목록인데, 2020년의 개봉작들이 없으면 이건 실패라고 해야 할까. 2021년에는 부디 극장에서 본 개봉작들로 베스트 영화 목록을 가득 채울 수 있으면 좋겠다.



*커버 이미지 : 영화 '아이리시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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