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의 목적은 아끼는 게 아니다
계절이 바뀌면 옷장 정리를 한다. 겨울이 오기 전에 겨울 옷을 꺼내고, 여름이 오기 전에 여름옷을 꺼낸다. 집에 있는 옷들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되는 것 같다.
1)집에서 입는 옷
2)외출할 때 편하게 입는 옷
3)약속이 있어서 신경 쓸 때 입는 옷
지금 내가 입고 있는 티셔츠를 보니 한 때는 약속이 있을 때 입던 티였고, 시간이 지나 외출할 때 입던 티였다가, 지금은 목이 다 늘어나서 집에서만 입고 있다. 한때는 아꼈는데 이젠 집에서 입는, 누구에게 입은 모습을 보여줄 수도 없는 옷이 되었다.
옷장 정리를 하다가 가장 아쉬울 때는, 중요한 일에만 입으려고 했던 옷의 상태가 안 좋아졌을 때다. 아무리 관리를 열심히 해도 옷에는 수명이라는 게 있다. 결국 몇 번 입어보지도 못하고 입지 못할 상태가 되는 옷을 보면 마음이 안 좋다. 아끼다가 본전도 못 찾는 격이다.
최근에는 누군가를 만날 일이 없다 보니, 신경 써서 옷을 입은 기억이 거의 없다. 외출이라고는 출근뿐이다. 그나마 출근조차도 재택근무와 병행 중이라 일주일에 몇 번만 간다. 즉, 일주일에 몇 번 없는 출근만이 나의 유일한 외출이다. 그러므로 이때 입는 옷이 내가 타인에게 보여주는 유일한 옷인 거다.
회사에서 입는 옷은 깔끔하게 입을 뿐이지,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 교복처럼 입는 바지가 있고, 번갈아가면서 입는 남방, 니트 등이 몇 개 있다. 2020년을 돌아보면, 내가 외출 시 가장 많이 입은 옷은 내가 좋아하는 옷이 아니라 별 신경 쓰지 않는 옷들이다. 식사 중에 김치 국물이 묻어도 그러려니 할 수 있는 옷들.
약속이 없으니 굳이 좋아하는 옷을 입고 나갈 일이 없는 편한 2020년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좋아하는 옷을 입지 않고 옷장에만 둔다면, 그게 과연 옷을 제대로 활용한 건가 싶다. 누구한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아니어도, 유일한 외출이 출근이라면 나름대로 기분 낸다는 생각으로 입고 갔어도 되는 게 아니었을까. 아끼다가 옷장 안에서 수명이 닳아간다면, 그건 결국 나의 손해일 텐데. 속된 말로, 아끼다가 똥 되는 거다.
닳도록 자주 입는 게 아끼다가 썩는 것보다 나은 건 당연한 일이다. 옷의 입장을 생각해서, 다음 출근 때는 아낀다는 이유로 안 입었던 옷을 입고 나가야겠다.
*커버 이미지 : 영화 '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