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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Jan 04. 2021

그때 그 고3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입시학원에서 만난 고3들

"입시생들 모의 면접 봐주는 건데 도와줄 수 있어?"


입시생들이 다니는 학원에서 일하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모의 면접을 진행하는데 도와줄 수 있는지 물었다. 당시에는 프리랜서였기에, 오랜만에 들어온 일이 반가웠다. 


학원이 많은 동네인데, 이번에 처음으로 와보았다. 사교육의 중심으로 불리는 동네. 동네의 특징을 물으라고 하면 유명 맛집이나 특정 기업 사옥보다 '학원'이라는 키워드가 먼저 나오는 곳. 학원까지 가는 길에 사람들이 캠핑 의자까지 가져와서 긴 줄을 만들어서 기다리고 있다. 지나가면서 기다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학원 수강 신청 때문이라고 한다. 얼마나 인기가 많으면 모든 게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시대에 이렇게 아날로그로 수강 신청을 받는 걸까. 게다가 어떤 학원이길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모은 걸까. 


처음에는 논술 첨삭을 진행했다. 비교적 쉽게 풀리는 문제도 있었지만, 어려운 문제도 있었다. 냉정히 말하자면, 과연 내가 고3이었을 때 이 문제를 풀 수 있었을까 싶었다. 대학에서 작정하고 어렵게 냈다고 생각되는 경우도 많았다. 강사 입장에서 충분히 숙지를 한 채 학생들에게 요령을 알려주지만, 내가 저 나이 때도 풀 수 있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학생들의 글에 빨간펜으로 코멘트를 적으면서도 생각이 많아진다. 학원에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있는데, 이 많은 학생들이 모두 원하는 대학에 가게 되는 걸까. 답안지를 보니 학원에서 알려준 걸 잘 체득한 학생도 있고, 시간 투자가 많이 필요해 보이는 학생이 있다. 학원에 오지 않으면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도 존재한다. 학원에 다니지 않는 학생들이 이 문제를 푸는 게 가능은 할까. 사교육을 받지 않고 논술전형을 통과하는 게 가능은 한 건가.


모의 면접을 진행한다. 생활기록부를 보고 질문해야 하는 것도 있어서 학생들의 생기부를 본다. 지방에서 온 학생들이 많다. 이 학원에서 수업을 듣기 위해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등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이 모인 거다. 부모님도 같이 올라와 있는 걸까, 아니면 서울에 사는 친척집에 머무는 걸까. 강사 자리를 소개해준 친구에게 들어보니, 이곳 학생들은 밥도 대부분 근처 편의점에나 패스트푸드점에서 먹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다들 밥은 잘 챙겨 먹고 있을까. 


모든 학생들이 하나 같이 화려한 생기부를 자랑한다. 다들 열심히 책을 읽고, 동아리 활동을 하고, 봉사 활동을 했다. 공부만 하기도 바쁠 것 같은데 언제 이런 활동을 다 하는 걸까. 물론 서류는 어디까지 서류이므로, 실제와 다를지도 모른다. 다만 실제로 면접관들이 생기부를 들여다보는 시간은 길 수가 없을 거다. 응시생은 많고, 생기부에는 많은 내용이 담겨있으니까. 모의 면접을 진행하기 전에 생기부들을 보면서, 내가 고3이었을 때보다 상향 평준화되었음을 느낀다. 경쟁은 더 치열해졌고, 요구하는 것도 더 많아졌다. 


실제 면접과 똑같이 진행하므로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모의 면접을 시작한다.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서도 질문하고, 생기부를 토대로도 질문을 한다. 난민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친구들 사이에서 본인은 어떤 사람인가요, 제일 인상 깊게 읽은 책은 뭔가요. 떨려서 말을 제대로 못하는 학생도 있고, 막힘없이 말을 하는 학생도 있다. 


피드백을 하면서 나름대로 정한 원칙이 있다. 절대 상처주지 말 것. 어떻게든 장점을 찾아내서 칭찬을 한다.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최대한 좋게 표현해본다. 부족한 점은 면접을 보는 자신이 제일 잘 알 거다. 


잘하고 있으니 자신감을 가지라는 말로 모의 면접은 마무리된다. 어떻게 하든, 잘하고 있는 거니까. 정답에 가까운 것이 있는 세계이지만, 단정 지을 수 있는 정답이 없는 세계이기도 하니까. 어차피 나와는 이제 다시 볼 일이 없을 거다. 잘하고 있다, 라는 응원을 던진다. 내가 고3이었을 때,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으니까. 


모의 면접이 끝나고 집으로 갈 준비를 한다. 학생들은 아직 수업이 남은 것 같다. 밤이 깊어가는데 학원은 붐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생각한다. 내가 만약에 고등학생 때 이런 학원을 다녀다면 더 좋은 대학에 갔을까. 입시가 정보 싸움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어차피 돌아오지도 않을 과거를 생각하는 걸 즐기지 않는다. 미래를 생각한다. 내일 있을 수업을 그려본다. 내일의 논술 첨삭, 내일의 생기부, 내일의 모의 면접, 내일의 학생들. 


수업이 끝나고 돌아갈 때마다 가장 많이 느끼는 건 두려움이다. 혹시라도 내가 한 말 중 어떤 말이 정답이 아닌데 정답인 것처럼 느끼면 어쩌지.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상처 주는 말이 있지 않을까. 이왕이면 모두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을 텐데, 모두 좋은 결과가 있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다. 입시가 전부인 아이에게 '대학이 전부가 아니야'라는 말처럼 무책임한 말도 없을 거다. 이 아이들은 모두 사활을 걸고 있다. 사활을 걸고 싶지 않아도, 주변의 모든 환경이 압박으로 다가올 거다. 


나도 사실 답을 잘 모르겠다. 논술 문제나 모의 면접에 대해서는 그럴듯한 답을 제시해주지만 그 이상은 나도 답을 해줄 수가 없다. 인성에 대한 질문은 내가 던져놓고도, 피드백을 주면서 어색함을 느낄 때가 많다. 스스로 답하지도 못할 질문인데, 강사라는 완장 달고서 가소로운 소리를 하는 것만 같아서. 


지금쯤 다들 원하는 목표를 이뤘으려나. 재수를 택한 학생도 있을 거다. 신입생이 되었든 재수생이 되었든, 코로나 때문에 힘든 한 해였을 거다. 잘 사는 게 뭔지, 나도 그 기준을 모르기에 '잘 살고 있어'라고 안부를 물을 수도 없을 거다. 


그냥 지내면, 그거면 된 거다. 다들 그냥 나름의 방식으로 지내기를, 그저 별 탈 없이 그렇게 지내기를.



*커버 이미지 : 영화 '명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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