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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Jan 01. 2021

20년의 마지막 날, 코로나 검사를 받다

코로나와 불안

코로나 확진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새해이지만 바뀐 건 없다. 20년의 불안은 21년으로 고스란히 넘어왔다. 새로운 챕터가 열리는 줄 알았지만, 이전 챕터의 연장이다. 12월 32일인 것만 같고, 챕터 20 다음으로 챕터 21 대신에 챕터 20-1이 등장한 것 같다. 이렇게 20-1, 20-2, 20-3으로 넘버링이 되면 안 될 텐데.


20년은 코로나의 해였고, 20년의 마지막 날 내가 한 일은 코로나 검사를 받는 거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힘들겠지만, 어쨌거나 불가항력의 범위 안에서 확진자가 등장했고 같은 공간에 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든 마스크를 열심히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지도 앱에 선별 검사소를 검색해서 가장 가까운 검사소로 갔다. 연락을 받고 검사소로 간 다른 이들은 대기줄이 길거나 했다는데, 다행인 건지 나는 가자마자 검사를 맡았다. 말만 듣던 검사를 받게 되었는데, 다른 것보다도 그곳에 있는 분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들어서 온도가 많이 떨어졌고, 방호복을 입고 있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거다. 분명 협조적이지 않은 이들도 방문을 할 거고.


검사를 금방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검사 결과는 다음날 나온다는 안내문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시뮬레이션을 시작했다. 평소에도 없는 걱정도 만들어내는 내게, 코로나는 걱정을 증폭시키기 아주 좋은 아이템이다. 음성이라면 나의 일상에 별 변화가 없겠으나, 양성일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족들은 어쩌지, 아버지는 지금 하시는 일에 지장이 생기는 게 아닐까. 어머니는 외할머니랑 왕래가 많아서, 외할머니한테는 더 치명적일 텐데. 이런 식의 걱정 가득한 상상은 점점 커졌다.


퇴근하고 영화를 보고, 12시가 넘어서는 주변에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12월의 마지막 날에 코로나 검사를 받게 될 줄은 몰랐다. 2020년은 쭉 이런 식이었다. 예상 못한 사건으로 가득하다. 코로나가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1월 1일이 되었지만 딱히 새해로 느껴지진 않는다. 오후가 되어야 문자가 올 텐데, 시간이 더디게 느껴졌다. 양성이 떴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오후 1시쯤, 문자가 왔다.


'음성'


치열하게 찾던 두 글자가 보이고, 그제야 안도했다. 불행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종료했다. 21년의 첫 번째 사건은 떡국을 먹은 것도 아니고, 영화를 본 것도 아니고, 코로나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은 거다. 하루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많은 걱정을 하면서, 코로나의 위험을 제대로 실감했다. 무엇보다도 주변에 민폐를 주고 싶지 않다. 아무리 조심해도 어떤 불가항력의 이유로 확진 판정을 받았을 이들의 마음은 감히 헤아리지 못할 거다. 


모두들 새해 소원으로 코로나가 사라지길 바랐을 20년의 마지막 날이 지났다. 나의 코로나 검사는 음성으로 끝났지만, 코로나의 위협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코로나와 완전하게 이별하게 되었다는 소식 앞에 행복을 시뮬레이션하고 싶다. 부디 그 날이, 21년 안에 포함되어 있기를.



*커버 이미지 : 프랜시스 베이컨 'Head of a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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