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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Jan 06. 2021

내가 쓴 글의 조회수를 확인하지 말 것

숫자에 집착하면 슬퍼지는

살면서 정량화는 피할 수 없다. 특히 자소서를 쓸 때 정량화는 필수다. 기업 입장에서 추상적으로 쓴 설명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포트폴리오에 자신의 작업물을 설명할 때도 그 성과에 대해 숫자로 표기하는 걸 강조한다. 숫자로 표현할 수 없을 때 각종 수식어와 함께 추상적인 말들이 붙는다. 예를 들어서 기업의 SNS를 운영했다면 어떤 컨셉으로 운영했는지보다도 팔로우 수와 좋아요 수를 표시한다. 


한동안 자소서 첨삭을 봐주는 일을 했고, 나 또한 숫자를 강조했다. 시간이 지나 나도 이직을 준비하게 되었고, 나를 숫자로 표현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숫자로 적자니 너무 적은 수 같고, 말로 풀어서 쓰자니 너무 추상적이고. 숫자든 말이든, 나는 왜 이리 시원치 않은 것일까. 세상은 대부분 잘난 지표만 보여주다 보니, 남들의 숫자는 커 보인다. 그래서 자소서 워드 파일 앞에서 고민이 많아진다. 마우스 커서가 깜빡이는 횟수 말고는 그 어떤 숫자도 쉽게 말할 수 없다.


이직을 한 뒤에도 숫자와의 싸움은 계속된다. KPI 설정 시에 숫자는 필수다. 나의 성과 또한 숫자로 증명된다. 매일매일 숫자와 싸운다. 회사 내에서 아무리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해도 나의 성과는 내 사번 옆에 숫자로 기입된다. 


퇴근 후에도 숫자에서 벗어나는 건 쉽지 않다. 책을 내고 나서 가장 경계한 게 알라딘, YES24 등에 방문해서 판매지수를 확인하는 일이다. 출판사에 다니는 선배에게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서 판매지수를 보고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유추하는 공식을 들은 적이 있다. 책을 낸 이후로는 머리에서 지워버렸다. 그러나 가끔 사이트에 방문할 때면, 보고 싶어 지는 유혹을 느낀다. 어차피 실망할 거면서 말이다. 무슨 기대를 하는 걸까.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려도 다음날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이 '좋아요'의 숫자이다. 태연한 척 해도 어느새 숫자를 확인하고 있다. 숫자가 모든 걸 증명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숫자에서 신경을 끌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숫자는 너무 편리하다. 단숨에 모든 걸 압축해서 보여주고, 그래서 무섭고 슬프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나서도 다음날이면 습관적으로 '통계' 탭에 들어가서 조회수를 본다. 가끔 브런치, 다음, 카카오 등에 노출이 되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곤 한다. 확실한 건 내 기준에서 좋은 글이 반드시 높은 조회수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거다. 알고리즘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다. 


숫자를 피할 수 없다면 기대를 안 하는 게 최선이다. 어차피 낮은 숫자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 게 속편하다. 한 명이라도 봐주면 좋겠다, 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사실 많은 사람이 봐주면 좋은 게 당연한 거 아니겠는가. 그러나 기대는 사람을 지치게 하므로, 낮은 숫자가 나를 기다릴 거라고 생각한다. 높은 숫자가 가끔 찾아오면 이벤트 정도로 여겨본다. 


숫자는 운도 따라줘야 한다. 숫자에 흔들리기에는, 숫자는 변수가 너무 많다. 그러므로 기준은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괜찮으면 괜찮다고 믿기로. 그래야 낮은 숫자 앞에서도 오래오래 갈 수 있을 테니까. 방점을 타인에게 찍지 말고 자신에게 찍는다고 생각하고, 나의 숫자를 본다. 조회수 대신 쓴 글의 개수나 앞으로 글을 쓸 무수한 날들. 매일매일 한편씩 쓰기, 손에 1이라는 숫자 하나를 들고 꾸준히 걷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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