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1 day 1 scen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 Jan 10. 2021

기억이란 '빛'이자 '빚'이다

영화 <작은 빛>과 기억의 힘

영화 '작은 빛'의 주인공은 뇌 수술을 앞두고 있다. 뇌 수술 후 기억을 잃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캠코더로 가족들을 촬영한다. 갑작스럽게 어머니의 집에 방문하고, 혼자서 아들을 키우는 누나에게 어떻게 사는지를 묻고, 조카와 목욕탕에 가고, 이복형에게 어릴 적에 잘 추던 춤을 춰달라고 하고, 오랜만에 아버지의 산소에 방문한다. 어머니의 집에 있던 카메라에서 예전 사진을 발견하고, 사진들도 촬영해둔다. 어머니, 누나, 조카, 각자의 이름을 붙인 폴더 안에 찍어둔 영상을 정리한다.


좋은 영화의 기준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내게 있어서 좋은 영화의 기준은 두 가지다. 하나는 꽉 짜여 있어서 푹 빠져서 볼 수 있는  영화이고, 또 하나는 여백 안에 나의 개인적인 추억이나 상상을 더 할 수 있는 영화. '작은 빛'은 후자에 해당하는 영화이다. 영화의 몇몇 장면들은 내 마음 안에 어떤 버튼을 누르는 느낌이었다. 추억과 관련된 부분들. 영화의 어떤 장면 때문에 우는 게 아니라, 어떤 장면이 기억 속 어떤 장면을 떠올리게 만들어서 운다면 그 영화는 슬픈 영화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빛과 기억은 늘 닿아있다. '이터널 선샤인'과 '작은 빛' 모두 빛과 기억을 연결한 영화다. 우리는 매 순간 기억을 만들고, 과거의 기억을 반추하며 살아간다. 그러므로 기억은 살아가야 할 이유이자 살아갈 수 있는 이유이다. 힘들 때 좋았던 과거를 떠올리고, 좋은 기억을 만들기 위해 오늘을 살아가니까. 누군가에게 기억되기 위해 투쟁하듯 사는 건 인간의 본능일 거다.


한편으로는 기억인 빚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과거의 순간들을 떠올려 보면, 고마운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빚을 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잘못했던 순간도 떠오른다. 시간이 지나 곱씹고 보니 명백하게 나의 잘못이었던 것들. 지금 내 옆에 있는 가족에게도 잘못을 하고, 고마움을 느끼며 빚을 졌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게다가 내가 가지고 있는 추억은 많은 부분 가족에게 빚지고 있으니까.


빚처럼 느껴지는 기억을 가지고 그걸 갚기 위해 전진한다. 더 나은 기억이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순간을 빛처럼 바라보고 나아간다. 그러므로 기억은 빚이자 빛이다. 나를 지탱해준 기억과 결국 내가 가지고 싶은 아름다운 기억을 향해, 오늘도 살아간다. 



*커버 이미지 : 영화 '작은 빛'

매거진의 이전글 전국 수염인들의 애로사항 체험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