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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Jan 11. 2021

생애 첫 에스프레소

어쩌다,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쓰기 때문이다. 한때는 연습도 해보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실패해도 계속 도전해야만 하는 지상과제는 아니었고, 그저 나의 취향을 넓히려는 시도였다. 가끔 '다들 아메리카노지?'라고 자연스레 메뉴 통일을 외치는 회사 상사의 말이 아닌 이상,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카페를 갈 수 없는 요즘, 처음으로 갔던 카페를 떠올려본다. 아마 수능을 마친 뒤였을 거다. 같은 반 친구와 밥을 먹기로 했고, 밥을 먹은 뒤 카페를 갔다. 생애 처음으로 간 카페였다. 친구와 들어간 카페는 꽤 가격이 비쌌다. 친구와 김밥천국에서 먹은 제육덮밥과 비슷한 가격으로 음료를 마셔야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음료를 보면 원샷하기 좋아하는 지금조차도, 비싼 음료를 썩 좋아하진 않는다. 편의점에서 산 커피우유나 카페에서 주문한 프라푸치노나, 내겐 그저 단숨에 마시고 싶은 음료로 보일 뿐이다.


카페에 처음 와 본 사람에게 카페의 모든 메뉴는 선택하기 쉽지 않았고, 결국 나의 지갑 사정에 가장 맞는 음료를 주문했다.


"에스프레소 한잔 주세요."


아마 주문을 받는 분도 당황했을 거다. 지금 돌아보면 나 같은 손님이 꽤 있었을 것 같다. 누가 봐도 에스프레소 애호가가 아니라, 제일 저렴해서 주문했을 손님. 


"너 그거 뭔지는 알고 시키냐?"


나보다 먼저 카페에 와 본 친구는 내게 물었지만, 나는 아는 척을 하며 '즐겨마신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내 앞에 나온 작은 사이즈의 잔에 담긴 에스프레소 앞에서 표정을 들킬 수밖에 없었다. 친구가 아니어도, 무엇인가를 처음 봤을 때 나오는 표정이라는 걸 알 수 있었을 거다. 


게다가 한 입 먹고 나서는 음미라는 게 불가할 만큼 쓴 맛이 강했다. 아이들에게 '쓴 맛'을 학습시키기 위해 농축해뒀다가 한 방울 정도 맛보게 해주는 용도의 액체인가 싶을 만큼 독했다. 연습한다고 익숙해질 맛이 아니라는 걸, 작은 잔에 든 에스프레소를 다 마시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친구와 했던 이야기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에스프레소의 맛은 지금도 뚜렷하다.


코로나 때문에 지금은 카페를 못 가지만, 어느새 카페는 일상이 되었다. 처음 카페에 가서 에스프레소를 주문한 이후로 에스프레소를 주문한 적은 없다. 늘 처음 보는 메뉴를 주문한다. 물론 최대한 달고 맛있어 보이는 것으로. 나이를 먹을수록 입맛은 변하는 게 느껴지는데, 커피가 당기지는 않는다. 커피가 아니어도 삶은 이미 적당히 씁쓸하고 담백하다.


커피도 익숙하지 않은데, 설마 에스프레소가 나의 취향이 되는 날이 올까. 너무 강렬하게 나쁜 첫인상 때문에 멀리 하다가, 다시 대면하고 나니 좋은 사례가 '아주 간헐적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한동안 우유에다가 커피를 타 먹기는 했는데, 이런 류의 시도를 하다 보면 에스프레소와도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에스프레소와 재회하는 날, 나의 혀와 마음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커버 이미지 : 영화 '커피와 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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