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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Jan 26. 2021

내가 빌려준 천 원은 어디로 갔을까

천 원은 안 갚아도 되는 거야?

"나 천 원만 빌려줄 수 있어?"


교복을 입던 시절, 학교나 학원에서 이렇게 물어오는 친구들이 간혹 있었다. 용돈을 받아서 생활하던 당시에는 현금을 늘 가지고 다녔다. 빌려달라고 말하는 친구의 유형도 다양했다. 무척이나 친해서 마음 편히 빌려주게 되는 친구도 있고, 인사 몇 번 했을 뿐인데 태연하게 빌려달라고 하는 친구도 있었다. 빌린 뒤에 바로 갚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자신이 빌렸다는 사실을 잊는 친구도 있다.


학생에게 천 원은 결코 적은 돈은 아니었다. 매점에서 빵이나 음료수를 사 먹는 데 있어서 천 원은 분명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내 천 원 언제 갚을 거야'라고 말하는 게 쉽기 않았다. 아마 당시에는 만인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에 빠졌던 때여서 그런 것일지도. 지금도 이 병이 완전하게 완치가 되지는 않았고, 어쨌거나 그 시절에는 그렇게 호구가 되기도 했다. 갚으라고 독촉하는 입장이 되는 게 너무 싫었고, 그렇게 천 원을 잃어갔다. 그 천 원들을 다 모은다고 엄청나게 큰돈은 안 되겠지만, 사람에 대한 믿음은 지금보다 두텁지 않았을까.


교복을 입을 날이 얼마 안 남은 시점부터는 주변에서 천 원짜리를 빌려달라고 하면 반사적으로 '없다'라고 답했다. 갚지 않는 이들을 몇 번 겪고 다니, 정말 친한 친구가 아닌 이상 빌려주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차라리 내가 사주고 말았던 것 같다.


나이를 먹었다고 딱히 달라지는 건 없는데,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이들의 액수는 차근차근 늘어났다. 천 원짜리는 금세 만 원짜리가 되었고, 십만 원만 입금해줄 수 있냐고 묻는 이도 있었다. 십만 원을 입금해준 친구는 그 이후 연락이 되지 않는다. 인연의 값이 십만 원이라는 게 슬펐다. 과거에 천 원 때문에 소원해진 인연과 비교하자면, 그래도 인연의 가격이 제법 오른 걸까.


아는 사이끼리 돈거래하지 말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님을 느낀다. 당시에는 돈을 입금해주면서도 이 인연인 끝날 수 있음을 직감한 것 같다. 돈은 나의 하루를 구성하는, 눈에 너무 잘 보이는 물질이다. 인연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돈은 늘 흘러가는데, 그게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순간 관계의 기류는 묘하게 바뀐다.


"그때 빌린 천 원, 지금 갚을 수 있어?"


오랜만에 재회한 친구에게 그렇게 묻는다면, 아마 내가 쪼잔한 사람이 될 거다. 푼돈 가지고 왜 이러냐고. 그 말을 들으면 안도할 거다. 천 원으로 확인 가능한 인연이라면,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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