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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Jan 27. 2021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조차 목적으로 바라보기

"쉴 때는 뭘 해야 해?"


자주 듣는 말이다. 쉴 때는 무엇을 해야 하나. 그런데 '쉼'을 기준으로 보자면, 사실 쉰다는 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늘 시달리기에, 쉴 때조차도 '하다'라는 동사를 버리기가 힘들다. 쉼조차도 생산성의 기준에서 보는 거다. 쉰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쉼에 대한 미션을 스스로에게 주는 것.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내가 그렇기 때문이다. 퇴근 후에는 직장에서 하던 일 생각을 버리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일 생각을 안 해도, 계산하는 버릇은 끝나지 않는다. 집에 가서 브런치에 글을 짧게 남기고, 영화를 한 편 보자. 이에 드는 시간에 대해서도 계산해본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시간은 얼마나 걸릴 거고, 내일 출근이니까 일찍 자야 하므로 영화의 러닝타임은 너무 길면 안 된다, 라는 식의 계산. 밥을 먹고 씻는 시간조차도 계산에 포함시킨다. 퇴근 후 스스로에게 주는 퀘스트. 사실상 쉰 게 아니라, 생산활동을 한 거나 다름없다. 이렇게 쉼이 사라진다.


"쉴 때는 뭐해?"


이 질문 앞에 글을 쓰고 영화를 본다고 답하지만, 사실 이건 쉬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진짜 쉬는 순간은 계량화가 안 되는 순간이다. 숫자를 버려야 한다. 숫자로 표현할 필요가 없는, 계산 따위 필요 없는 순간들. 예를 들면 퇴근하고 침대에 누워서 뒹굴거리면서 유튜브를 보는 게 오히려 쉼에 가깝다. 물론 채널과 시간까지 완벽하게 통제해서 공부하듯 유튜브를 본다면, 그것 또한 쉼이 아니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쉼이라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연습이 필요하다. 무엇인가 하는 것도 참 힘든 일인데,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니 뭔가 이상하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만, 나는 이 와중에도 시계를 살핀다. 이제 곧 저녁 8시가 되고, 영화를 한 편 정도 볼 수 있고, 영화를 본 뒤에 관련 글들을 찾아보면 잠들 시간이 될 거라고 계산해본다. 이건 쉼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정작 내게 쉬는 순간은 '쉴 때는 뭐해'라는 질문의 답으로 포함도 안 시키는 밥을 먹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잠들기 전에 핸드폰을 보는 순간이 아닐까. 


"나는 아무것도 안 해."


자신 있게 대답할 날이 올까. 아무것도 안 해도 불안하지 않으려면 좀 더 치열하게 아무것도 안 해야만 한다. 그래, 아무것도 하지 말자. 강박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말아 보자. 남들에게 쿨하게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쉬는 거야'라고 말해놓고, 정작 쉴 때는 뭐 하나라도 더 해야 할 것 같아서 바둥거리면 얼마나 별로이겠는가. 조금씩 놓아보자. 아무것도 안 해보자. 



*커버 이미지 : 피터 브뤼겔 '게으름뱅이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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