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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Jan 24. 2021

오컬트 영화의 맛

하루에 오컬트 영화 4편 보기

작은 수술 뒤에 항생제를 처방받았고, 항생제를 먹으면 잠이 쏟아진다. 그렇다고 마냥 자고 싶지는 않은 주말이라, 평소처럼 영화를 보기로 한다. 느린 호흡의 롱테이크 위주의 영화를 봤다가는 잠이 쏟아질 게 뻔하기에, 평소에 썩 즐겨보지 않는 공포 영화를 보기로 한다. 오컬트 장르에 해당하는 영화들을 몰아서 보았다. 아침 일찍 눈이 떠진 덕분에, 중간중간 잠이 쏟아지는 순간은 있었으나 결국 4편의 영화를 보았다.


최근 들어서 가장 주목받는 공포 영화감독은 아리 애스터다. '유전'과 '미드소마' 두 편으로 단숨에 공포 영화 팬들의 기대주가 되었는데, 둘 다 크게 보자면 오컬트에 속한 작품이다. 공포 영화를 썩 안 좋아하기에 미루던 아리 애스터 감독의 작품으로 주말을 시작했다. 토요일에는 '유전'을 보았고, 일요일에는 눈을 뜨자마자 '미드소마'를 보았다. 일요일에 연달아서 본 영화의 목록은 '미드소마', '위커맨', '악마의 씨', '쳐다보지 마라'까지 네 편이고, 모두 오컬트 무비의 대표작들이다. 


이성적인 편인데 쓸데없는 상상도 많이 하는지라, 오컬트의 세계는 늘 흥미롭다. 다만 서양의 오컬트 무비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건, 내게는 너무 먼 세계처럼 느껴진다는 거다. 위에 언급한 작품들보다 '곡성'을 더 좋아하는 건, 취향의 문제도 있겠지만 내게 얼마나 닿아있는 공포인가의 문제도 있다.


'미드소마'와 '위커맨'은 각각 스웨덴과 스코틀랜드의 폐쇄적인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유전'과 '악마의 씨'는 미국의 집을 배경으로 하고, '쳐다보지 마라'는 이탈리아 베니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내 생활 영역과 너무 다른 공간이 배경으로 등장해서 그런지 세계관에 몰입하기보다 철저하게 영화로 봤던 것 같다. 이들이 겪는 공포가 내게는 좀처럼 공감이 잘 안 되기도 했고. 초현실적인 일에 대해 별 생각을 안 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더 공포를 느끼는 성격 때문일까.


다만 오컬트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신념이다. 세상이 안 믿어줘도 내 눈에 악을 숭배하고 이상한 신념을 가지고 움직이는 공동체가 있을 때,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입장에 몰입하는 순간 오컬트 영화의 매력이 발휘된다. 안타깝게도, 오늘 나의 감상은 고통받는 인물들이 크게 복수하는 장면을 보고 싶다는 거에 그쳤다. 


굳이 오컬트라는 장르로 정리하지 않더라도, 낯선 세계와 만나서 혼란을 느끼는 인물들을 보는 건 영화적으로 큰 즐거움이다. 컨디션 때문인지, 내 취향인지 몰라도 오컬트 영화들에 남들처럼 깊게 몰입하지 못한 게 좀 아쉬울 뿐이다. 장르 영화의 패턴이 비슷한 것도 그렇게 느낀 이유 중에 하나일까. 마니아들이 많은 영화들인데 그들에게 동조할 만큼 감흥을 못 느낄 때마다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즐길 수 있는 분야가 많은 건 좋은 거니까.


다행히도 세상에는 볼 영화가 많다. 이전에 본 영화까지 합해도 아직 이 장르를 제대로 파악할 만큼 많이 보지도 않았으니, 앞으로 좀 더 파보려고 한다. 결국 그 맛을 제대로 못 느낄지라도, 그래도 이 맛에 보는구나 라고 알아두는 건 내 취향을 정교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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