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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Jan 23. 2021

별 거 아닌 줄 알았는데 수술이 필요한 것

별 거 아닌 줄 알았던 나쁜 것을 제거해야 하는 순간

겨울이면 건조하고 가려워서 긁다 보면 피부에 상처가 날 때도 있다. 어느새 피부에 상처까지 생기면 피부과를 간다. 이전에 피부과에서 준 약도 거의 다 사용했다. 내일은 피부과에 가기로 한다. 잊어먹지 않도록 캘린더에 적는다. 피부과 가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토요일 진료는 몇 시까지 하는지 병원에 전화로 문의를 한다. 통화하면서 주변의 인기척이 안 느껴지는 걸 봐서는 아직 진료 보는 이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 헬스장이 다시 문을 열어서, 병원에 갔다가 헬스장이나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한다. 오전에 배스킨라빈스에 미리 주문해둔 아이스크림도 수령해야 한다. 모든 일을 몰아서 하고 나면 괜히 뿌듯하다. 체크리스트는 지우는 맛에 적는 거니까.


한 정거장 거리이지만 일찍 가지 않으면 금방 사람들로 가득 해지는 오래된 병원이라, 지하철을 탄다. 어머니도 다녔을 만큼 오래된 병원이고, 어릴 적에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다녔었다. 이 동네는 왜 이리 변하지 않는 걸까. 어르신들이 많은 동네여서 그런 걸까. 변해야 하는 것과 변해서는 안 될 것에 대한 의견은 늘 분분하다. 


병원에 가니 다행스럽게도 제일 먼저 도착해서 바로 진료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진료 볼 사람이 별로 없을 때는 길게 말을 하실 때도 있다. 내가 차고 있는 시계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있고, 여행에 다녀왔다고 하면 여행지에 대해서 긴 이야기를 하시기도 한다. 독일 여행을 다녀온 뒤에 갔을 때는 항공사인 '루프트한자'의 뜻부터, 하이델베르크의 역사까지 듣느라 꽤나 긴 시간 진료실에 있었다. 나야 들으면 되니 상관없지만, 혹시라도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진료를 받으려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등에 뭐가 났는데 이게 뭘까요?"


"이건 수술해야겠는데."


의사 선생님은 부위를 찍어준 뒤에 피지낭종이라고 했다. 자세한 설명은 듣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그냥 둬서 좋을 게 없는 거였다. 시간 지나면 사라지겠지 싶어서 몇 달을 방치해뒀는데, 혹시나 해서 가볍게 물어봤는데 수술 이야기가 나올 줄이야. 


그렇게 갑작스럽게 수술을 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많이 아프진 않았다. 만질 때마다 동그랗게 튀어나와있는데, 여드름처럼 고름이 나올 텐데 그걸 직접 못 보는 게 좀 아쉬웠다. 촬영해도 되냐고 물었다면, 병원에 다시 못 오는 블랙리스트에 오를지도 모른다. 


"생긴 지 꽤 되었나 봐요. 이거 오래되면 냄새도 고약할 텐데."


"죄송합니다, 제가 둔합니다."


나의 둔함에 대해 사과를 몇 번 하다 보니, 수술은 끝나 있었다. 수술이라는 단어가 주는 위협적인 스케일에 비하면 비교적 짧게 끝났다. 그동안 등에 달고 산 게 뭔가 싶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친절하게도 방금 내 등에서 나온 고름처럼 생긴 걸 보여줬다. 저 정도라면, 의사 선생님도 제거하면서 뿌듯하지 않았을까. 유튜브에는 여드름이나 블랙헤드 등을 짜내는 걸 보면서 좋아하는 마니아들이 존재한다. 의사 선생님들은 그런 유튜브를 매일 실제로 볼 테니 지겨우려나.


예정에 없던 수술로 다시 하루에 세 끼를 챙겨 먹고 항생제를 며칠 동안 먹고, 다음에 병원에 갈 때까지 샤워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마침 헬스장에 다시 가기 귀찮았는데 좋은 명분이라고 생각했다. 진료가 끝나고 버스를 타고 배스킨라빈스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수령했다. 집에 가면 밥을 먹고 항생제를 먹어야 하고, 유산균을 비롯한 영양제 종류는 항생제랑 같이 먹으면 안 되니 시간 텀을 두고 따로 먹어야 한다. 아이스크림도 산 김에 맛을 보아야 하니 영양제를 먹고 시간 텀을 두고 따로 먹어야 한다. 캘린더에 시간을 쪼개서 일정을 추가해둔다. 항생제, 영양제, 아이스크림. 


만약에 마침 건조하지 않아서 피부에 상처가 안 생겼다면 피부과에 안 갔을 거고, 그랬다면 안 좋은 걸 계속 방치했을 거다. 평소에 예민한 척은 다 하면서, 왜 이렇게 둔했을까. 오늘 피부과에서 생긴 일은 거대한 사건은 아니지만 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내게 안 좋은 걸, 별 거 아니라고 치부하고 지니고 다닌 경우가 많지 않았나. 이번엔 아프지 않게 잘 제거되었지만, 다음엔 아픈 데다가 제거하기에는 너무 굳었다는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어떤 나쁜 부분을 방치하고 있을까. 내가 나의 나쁜 부분에 대해서, 그 나쁨이 풍기는 악취를 모른 척하고 사는 건 아닐까. 괜히 그런 생각을 했다. 좀처럼 바뀌지 않는 피부과가 위치한 동네처럼, 나 또한 많이 바뀌지 않았다. 등이 아니어도, 내 삶에서 자라고 있는 피지낭종에 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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