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1 day 1 scen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 Jan 31. 2021

영화 속 세상 말고, 진짜 세상 마주하기

영화에 지쳤을 때

컨디션이 썩 좋지 않은 주말이었다. 기분이 좋아지고 싶었다. 기분이 좋아지고 싶다고 해서 마음처럼 좋아지는 건 아니다. 주말에 밖을 나가는 선택지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므로 평소처럼 영화를 보았다. 마침 오늘까지 '인디그라운드'에서 한국 단편영화들을 온라인 상영해줘서 연달아서 보았다. 


영화는 어떤 식으로든 사회를 반영한다. 그렇기 때문인지 몰라도, 오늘 본 12~13편 정도 되는 단편영화들에는 불행의 풍경들이 유독 많았다. 이야기로 만들기에도 불행이 좀 더 용이했을 거다. 서사를 위해서는 갈등이 필요하니까. 영화를 볼 때마다 등장하는 불행들을 목격하는 게 힘에 겨웠다. 오전에 볼 영화 리스트를 짜고, 한편씩 격파하듯 보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탈진할 기분이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오기로 보기 시작했다. 속 편히 전개되는 16부작 드라마를 보았다면 좀 더 기분이 좋았으려나.


어제는 하루 동안 5편의 장편영화를 보았다. 어쩌다 보니 이틀 내내 영화만 보았다. 단 한 번도 밖에 나가지 않았다. 내일은 출근을 하는 날이다. 출근을 하면 어차피 나가니까 그때 나가기로 한다. 퇴근 후에도 별일 없으면 영화를 볼 거다. 영화가 보고 싶어서라기보다, 내가 지금 택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편하고 숫자로 셀 수 있는 일이라서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 또한 강박이다.


단편영화들을 쭉 보고 나서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장편 '내언니전지현과 나'이다. 개발한 회사에서도 방치하다시피 한 게임 '일랜시아'의 유저가 직접 만든 다큐멘터리인데, 몇몇 장면이 마음에 닿았다. 가장 크게 닿은 부분은 게임에서 다른 기능보다 소통이 크게 작용한다는 부분이었다. 일상에서는 털어놓지 못할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할 수 있고, 그 관계가 현실에서의 관계 이상으로 소중해서 이 게임을 한다는 것. 


코로나 이후로 '교류'라는 것 자체가 사라진 느낌이다.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진다는 이유로 굳이 할 수 있는 교류도 다 끊어버린 느낌. 영화 안에 갇혀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간단히 말해서 주말 내내 영화를 보다가 '현타'가 왔다. 나는 지금 혼자서 무엇을 위해서 이러고 있나. 이게 그렇게까지 즐거운 것 같지는 않은데.


갑자기 안 만나던 사람들을 만나기에는 시기적으로나 상황적으로나 쉽지가 않다. 일단은 내일이 되면, 그동안 못 갔던 헬스에 가야겠다. 헬스가 끝나면 밖을 좀 걸어야 할 것 같다. 밖을 볼 필요가 있다. 프레임 밖을 마주할 필요가 있다. 큰 모니터 대신 무제한에 가까운 하늘을 직접 볼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주말이다.



*커버 이미지 :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매거진의 이전글 저는 아파트에 살아본 적이 없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