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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Jan 30. 2021

저는 아파트에 살아본 적이 없어요

아파트가 집의 기준이 된 세상

독립을 목표 정한 지금, 직방이나 네이버 부동산 앱을 켜면 '원룸'을 기준으로 검색을 해본다. 검색 결과에서 몇 층 짜리 건물인지를 확인한다. 대부분은 층이 그리 높지 않은데, 간혹 높은 층수를 가진 건물도 등장한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 


나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에 살아본 적이 없다. 다녔던 회사는 대부분 엘리베이터가 있었지만, 내가 머무는 집은 늘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평생 살면서 이사 횟수는 6~7번 정도 되고, 모두 지금 사는 동네 안에서 이뤄졌다. 모두 몇 안 되는 가구가 각자의 생활을 꾸리는 주택이었다. 


초등학생 때 아파트에 사는 친구 집에 저녁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어두워진 시간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무서워했던 기억이 난다. 혼자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멈추기라도 하면 어쩌지. 이러한 공포는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3~4층 정도는 오히려 계단으로 오르는 게 속이 편하다.


이젠 슬슬 결혼도 하고 가정을 이룬 친구들은 대부분 아파트에 대해 이야기한다. 굳이 나의 친구들이 아니어도 많은 이들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파트에서의 경험이 기본값이지만, 내게는 아파트에서의 경험이 없다. 그게 아쉽거나 하지는 않다. 아파트가 아니어도 나의 삶은 불편함 없이 잘 진행되어 왔으니까. 


부동산 투자에 대해 아는 게 없지만, 아파트가 재테크를 위해서라도 필수사항이 된 거라는 건 알고 있다. 스무 살 때 은행에서 만들라고 해서 모르고 만들었던 청약통장조차도 결국은 아파트의 꿈 때문에 품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아파트에 살아본 적도 없고, 일반주택에서 사는 게 편한데 아파트를 꿈꿔야 한다는 건 일종의 주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모두 아파트를 말하고,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기분.


지금 집에서 산지 10년도 넘었다. 아파트처럼 동과 호를 헷갈릴 필요도 없이, 몇 개의 주택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엘리베이터는 없지만 덕분에 외출을 위해서는 강제로라도 계단을 사용해야 하니, 운동량이 부족한 내 입장에서는 이렇게라도 걷는 게 다행으로 느껴진다. 이 집이 과거보다 얼마나 가격이 올랐는지 같은 건 굳이 알고 싶지 않다. 어차피 부모님의 집이고, 팔기 위해 머무는 집이 아니라 살기 위해 머무는 집이니까.


부동산 앱을 보다가 아파트 가격이 보일 때가 있다. 과연 저 정도 돈을 모아서 아파트에서 살게 될 날이 올까. 늘 주택에 살아왔기에, 내게 그리는 집은 늘 주택이었다. 나의 미래에 아파트를 그려본 적이 없는데, 다들 목에 핏대를 새우며 말하는 아파트를 강제로라도 꿈꿔야 하는 걸까. 혼자 이렇게 생각해도,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안 해'보다 '못 해'에 가까울 만큼 아파트의 장벽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파트를 욕망해본 적 없는 게 다행인 걸까. 아파트의 '맛'을 느끼지 못한 게 좋은 걸까. 많은 이들의 꿈이 아파트라면, 이 땅 위에 존재하는 수많은 아파트는 모두 꿈으로 가득 차 있는 걸까. 회색빛 아파트 안에 총천연색의 꿈이 산다고 생각하면 아름답지만, 견고한 아파트의 벽 뒤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몇 년 후에 청약 점수를 계산하고, 아파트 입주를 위해 전략을 짜는 날이 오면 이 글이 낯설게 느껴질까. 확실한 건 몇 년 뒤에도 나의 집은 아파트가 아니라는 거다. 


나는 그저 내가 머물 수 있는, 살 수 있는 곳이면 된다. 집값도 생각 안 하고 철딱서니 없는 소리 한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집은 집일 뿐이니까. 지금도 아파트에 사는 지인 집에 가게 되면 단지, 동, 호 앞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 아파트가 대변하는 수많은 욕망들 앞에서 길을 잃고 싶지 않다. 나는 그저 쉴 집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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