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가장 조용한 극장
독립하고 나서 한 번도 극장에 안 갔다. 적응하기도 바빠서 영화 자체를 거의 안 봤다. 연재 중인 영화 글 마감 때문에 본 영화는 의무감으로 본 영화에 가까웠고, 오로지 유희를 위해 본 영화는 없었다. 아르헨티나 영화와 서부극을 마감을 위해 보았고, 집 근처 극장은 아직 제대로 확인도 못해보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최근에 유로 2020과 코파 아메리카가 진행 중이기에 축구 결과부터 확인한다. 회사에 도착해서는 업무 메일과 함께 구독 중인 업계 관련 뉴스레터들을 확인한다. 늘 뉴스가 넘쳐난다. 수많은 뉴스 사이에서 눈에 들어온 건 극장에 대한 뉴스였다.
서울극장이 문을 닫는다는 뉴스.
내가 평생 산 동네는 종로와 가깝고, 종로를 자주 갔다.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교복을 입던 당시에도 체험학습 비슷한 행사로 영화를 보러 갈 때도 서울극장에 자주 갔다. 을지로 쪽에서 회사를 다녔을 당시에는 퇴근하고 서울극장에서 영화를 보기도 했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서울극장 안에 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간 서울극장도 서울아트시네마 상영작인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였다. 만약에 서울극장의 영업 종료 전까지 다시 방문하지 않는다면, 마지막 영화가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가 된다. 그 여름 가장 조용한 극장이 될 서울극장이라니.
내게는 오래된 동네 친구들이 있다. 그중에는 소원해진 이도 있고, 아예 연락이 안 되는 이도 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오래되어서 기억이 희미하다. 이렇게 끊어진 인연이 아쉬워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어쨌거나 이 친구들과 가장 많이 어울리던 시절에도 함께 영화를 보러 갈 생각을 못했다. 당시에는 남자들끼리 몰려서 영화를 본다는 게 뭔가 어색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함께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고 당시 우리가 간 극장은 서울극장이었다.
서울극장에서 본 영화는 두 편이었는데 하나는 맷 리브스 감독의 '클로버필드'이고 또 하나는 이준익 감독의 '님은 먼곳에'다. '클로버필드'는 현란한 카메라 워킹과 함께 '이게 무슨 영화야'라는 충격을 주었고, 함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춘천 여행을 갔을 때 캠코더를 들고 가서 카메라 워킹을 따라 하며 놀았다. '님은 먼곳에'는 당시의 우리로서는 전혀 납득이 안 가는 서사여서 썩 좋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유행을 좇아 많이 돌아다니는 편도 아니고, 애초에 활동 범위가 좁은 편이라 추억이 담긴 공간이 많지 않다. 극장은 그나마 내게 추억이 담긴 공간이다. 내가 처음으로 의지를 가지고 극자에서 본 영화는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이 연출하고 배두나가 주연한 '린다린다린다'이다. 주말의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보고 재밌길래 같은 반 아이와 함께 봤는데, 내용은 이제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영화 제목과 동일한 가사의 주제곡은 지금도 꽤나 선명하게 떠오른다.
'린다린다린다'를 본 극장은 종로코아극장인데, 06년도에 사라졌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종로코아극장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서울극장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한 적 없는 지금처럼. 집에 모아둔 영화표를 살펴보면 서울극장에서 본 영화가 꽤 되는데, 사라진다니.
두렵다. 남은 극장들조차 사라질까 봐. 스무 살이 되고 매주 갔던 광화문 씨네큐브나 지금도 가장 자주 가는 극장 중 하나인 충무로 대한극장이 걱정이다. 코로나가 끝날 때쯤 모든 극장이 사라지면 어쩌나, 막연하게 했던 걱정이 현실이 될까 봐 두렵다. 방역 때문에 극장에 거의 안 간 게 사실이다. 그 사이에도 추억의 공간은 사라진다.
코로나가 다시 확신되는 지금 시기에, 무작정 극장을 자주 가겠다고 자신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그저 사라지는 걸 무기력하게 지켜볼 뿐이다. 코로나가 추억을 만들 현재만 빼앗아 간 게 아니라, 추억이 깃든 과거까지도 없애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여름, 독립 후 처음으로 가는 극장은 서울극장이 될 것 같다. 내 나름의 방식으로 이별을 준비해보려고 한다.
*커버 이미지 : 영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