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 Aug 16. 2021

점집부터 언덕집까지, 내 집을 찾아서

독립을 위해 본 집들

내가 살 집을 상상하면 아름다운 풍경이 떠오른다. 내 예산 등은 고려하지 않고 모든 것이 갖춰진, 동네부터 집 컨디션까지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집을 떠올린다. 처음으로 혼자 나와서 사는 것이기에 환상이 없을 수는 없다. 이런 환상을 품는 것도 나쁘지 않다. 왜냐하면 현실을 마주하고 나면 이런 환상을 다시는 품기 힘들고, 현실 앞에 투덜거리기 바쁠 테니까.


부동산 앱으로 내 예산에 맞는 집을 검색하면 내 예상과 전혀 다른 집들이 잔뜩 등장한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조건이라는 게 있다. 그 조건에 맞춰서 집을 계속 검색한다. 부동산에 무작정 들어가는 게 비효율적이라고 느껴서, 일단 처음에는 부동산 앱으로 괜찮은 매물을 찾고, 앱을 통해 중개사와 연락을 해서 방문 날짜를 잡고 방문을 했다. 


금방 집을 찾게 될 줄 알았으나, 집을 찾기까지는 꽤나 긴 시간이 걸렸다.



1. 욕망의 총집합 - 지하 노래방, 2층 점집, 옆집 로또 판매점


처음에는 당연히 회사 근처에서 집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회사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집을 찾고 연락했다. 역에서도 가깝고 위치는 괜찮았다. 차도가 바로 앞이라 소음이 좀 걱정되긴 했다. 


중개사가 좀 늦는다고 해서 집 앞에서 기다리는데, 내가 볼 이 집 앞이 이 근처의 '담배존'임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나와서 담배를 폈다. 나는 흡연자도 아니고, 담배 연기도 싫어하기에 집 안을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여기서 마음이 많이 떠났다. 


집을 둘러싼 환경을 보자면, 욕망의 집이라고 불러도 될 듯하다. 일단 지하에는 노래방이 있고, 위에 올라가면 점집이 있고, 옆 건물은 로또를 팔고 있다. 점집에서 성공을 점치고, 로또로 일확천금을 노리고,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그 모든 순간이 욕망의 총집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 가지 모두와 친하지 않은 내게 좋은 조건의 집은 아니었다. 왜 이 건물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는지 생각해보면, 이러한 환경 탓도 있지 않을까.


중개사가 도착하고, 중개사가 보여준 집을 봤다. 집 컨디션은 괜찮았다. 평수도 넓은 편이고 나쁘지 않았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여긴 아니다 싶었다. 처음 본 집을 덜컥 계약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처음부터 타협을 하고 싶지 않았다. 중개사가 계속 이곳은 안 시끄럽다고 하는데, 그 말에 신뢰를 잃은 것도 한몫한다. 노랫소리와 굿 하는 소리를 듣고 담배 연기를 마시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혹시 몰라서 집에서 회사까지 걸어가 보았는데, 꽤 많이 걷긴 해야 한다. 걷는 동안 생각을 정리해봐도 이곳은 아니라는 결론이 났다. 아쉬움이 전혀 남지 않았다.


2. 마음에 드는 집, 하지만 빚이 있는


회사 근처가 아니라 살고 싶은 동네에서 집을 찾기로 하고, 처음으로 부동산에 가보았다. 부동산에 가서도 중개사가 이미 내가 앱으로 본 매물들을 보는 것을 보면서, 부동산 앱을 사용하는 것과 부동산에 가는 것 중 무엇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느꼈다. 둘 다 병행하는 게 최선이라는 당연한 결론.


중개사가 보여준 집들 중에 딱히 마음에 드는 곳은 없었다. 이 예산에 이 정도면 괜찮다는 말만 반복될 뿐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을 흔들 정도가 아니라면, 2년 혹은 그 이상 있을 집을 함부로 계약할 수는 없었다. 내가 품은 게 과한 욕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최소한의 기준은 넘겨야 한다고 생각했으므로.


반나절 동안 5개가 넘는 집을 보았고, 마지막으로 한 집을 보았다. 현재 입주해 있는 사람이 있고, 인테리어를 깔끔하게 해 두어서 이 집에 내가 들어갔을 때 어떻게 지낼지가 바로 상상이 되었다. 그림이 그려진다는 건 좋은 집이므로, 잠시 고민을 하다가 가계약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빚이 너무 많은 집이었고, 은행에서도 전세 대출 실행이 안 될 것 같다고 해서 포기. 



3. 내리막길에서 넘어지면 큰일 날 것 같은 언덕 집


하루 종일 부동산에 올인하기로 한 날이다. 미리 부동산 앱으로 괜찮은 매물을 찾아서 순서대로 약속을 잡았다. 처음으로 간 집은 언덕에 있었는데,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굉장히 높았다. 


"겨울에 여기 얼면 내려가다가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중개사에게 농담처럼 물었는데, 답변으로 웃음만 올뿐이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건 자살 행위가 아닐까 싶을 만큼 가팔랐다. '뒷동네'라는 말이 어울리는 언덕 위쪽, 뒷산과 가까운 동네에 도착해 보니 공사 현장이 보인다. 공사 현장과 바로 맞닿아있는 집이 내가 찾은 매물이었다. 소주병과 담배가 현장 옆에 널브러져 있었다.


집에 들어가 보니, 하나의 집을 두 개로 나눠서 사용하는 꼴이었다. 10평짜리 집을 문만 분리해서 5평, 5평으로 나눠서 쓰는 집인 거다. 소음도 잘 들리고, 프라이빗하게 살기는 힘들겠다는 느낌을 주는 집이었다. 오늘도 내리막길을 무사히 지나서 왔다, 라고 생각하고 집에 와도 편하게 있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중개사가 그 이후 보여준 집들은 내가 누우면 끝날만큼 작은 집이어서 괜찮은 매물이 생기면 알려달라는, 어차피 답이 오지 않을 걸 알지만 형식적으로 주고받는 그 말을 하고 다른 부동산을 찾아갔다.


무작정 부동산에 들어갔다. '전세 있어요?'라는 말에 손을 흔들며 대꾸도 안 하는 곳도 있었고, '대출'이라는 단어를 꺼낸 순간 고개를 절레절레하는 곳도 있었다. 집을 찾기 위해서는 문전박대에 익숙해져야 하나, 싶었다. 


"서울에 제가 살 곳은 없는 걸까요".


괜히 서러워져서 친한 선배에게 전화해서, 매물이 하나도 없는데 독립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소연을 했다. 이왕 휴가까지 써서 나온 김에, 해 지기 전에 부동산 몇 군데만 더 가보고 들어가라는 답이 돌아온다. 통화 후에 들어간 부동산들도 돌아오는 답은 다 차가웠다. 


분명 높은 언덕에서 시작한 하루인데, 어느새 지하철 정거장으로 3~4 정거장 거리를 건너와서 밑으로, 더 밑으로 오게 되었다. 해가 떠있을 때 집을 보고 싶어서, 해가 곧 질 듯해서 마지막으로 부동산을 한 군데만 더 가보기로 한다. 


"예산이 어느 정도죠?"


문전박대를 예상했는데, 예산과 동네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를 물으며 매물을 찾는다. 그래도 괜한 기대를 하지 않기로 한다. 지쳤다고 막 계약하지는 말자는 생각도 한다. 매물을 2개 먼저 보여준다. 이미 이전에 다 보았던 집이다. 괜히 새로 보는 척하며, 그러나 괜찮다는 표시는 하지 않고 나온다.


마지막으로 보여준 매물은 방금 나온 집이라고 한다. 내가 이전에 가계약했던 집과 비슷한 컨디션이다. 이 정도 매물을 만나기 힘들고, 이런 컨디션과 입지의 집이라면 자취생들이 선호할 만해서 금방 계약이 되겠다 싶었다. 그동안 집들을 보면서 나름의 기준이 생겼고, 그 기준을 넘겼기에 가계약을 했다. 지금은 가계약했던 그 집과 계약해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만약에 전세 계약이 만료되고, 여러 사정으로 연장을 못 해서 새로 집을 구한다면 그때도 아마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 거다. 다만 이제는 독립하고 생활을 해보았기에, 어떤 게 정말 필요한지, 집을 보는 안목도 좀 더 나아졌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안목은 나아져도, 주머니 사정은 그리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게 서글프긴 하지만 말이다. 


집을 볼 때 무엇을 보는가. 포기할 수 없는 건 무엇이고, 타협 가능한 것은 어떤 것인가. 분명 지금도 여러 기준을 통해 고른 집에서 살고 있지만, 다음 집을 고를 때 고려해야 할 부분을 늘 찾으며 사는 기분이다. 내 집이 생기기 전에는 계속 그래야 할 거고, 집을 장만하는 건 더욱 어려워질 것 같아서 걱정이다. 


그래도 나 하나 지낼 집은 있지 않을까 하는 낙관으로, 여러 집들 사이에 선택한 나의 집에서 잠들기로 한다.




*커버 이미지 : Eugène Jansson 'The Outskirts of the Town'




이전 09화 독립 세 달 만에, 첫 배달 음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