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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Aug 16. 2021

독립 세 달 만에, 첫 배달 음식

배달 음식이라는 선택지

"밥은 주로 어떻게 해?"


독립한 이후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밥만큼 일상에서 중요한 건 없으니까. 독립을 결심하면서도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다. 과연 나는 혼자 살면 밥을 어떻게 챙겨 먹을까. 


처음에는 밥을 직접 해먹을 생각을 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종류의 조미료를 다 샀다. 간장도 국간장, 진간장 등 종류별로 다 사고, 된장, 고추장, 쌈장 등 장들도 종류별로 모두 구매했다. 꽃소금과 맛소금을 구별도 못하지만 둘 다 샀다. 대부분은 유통기한이 길어서 다행이라고 느꼈다. 왜냐하면 입주와 동시에 샀음에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도 안 쓰니, 집에 참기름이나 설탕이 있다는 걸 까먹기도 한다. 역시 유통기한이 제일 중요하다.


요리를 하지 않을 핑곗거리는 다양하다. 요리할 공간도 작고, 재료는 사고 나면 남아서 처치 곤란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오히려 사 먹는 게 싸고 편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마와 칼을 안 쓴 지 두 달 정도 되어간다. 심지어 계란 프라이조차도 요즘은 잘 안 해 먹어서, 프라이팬을 안 쓴지도 꽤 되었다. 식용유조차도 잘 안 쓰게 될 줄이야. 가스를 켜면 실내 온도가 급격하게 오르고, 환기도 필요하기에 애초에 주방에서 뭔가 해먹을 생각이 잘 안 든다.


"배달 음식 자주 먹겠네?"


주변에 자취하는 친구들 대부분은 배달 음식을 주로 먹는다. 나 또한 내가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독립 전에 본가에서 배달 음식을 2~3일에 한 번은 먹어서 그런지, 막상 나오니 별로 먹고 싶지가 않았다. 게다가 따로 붙는 배달 요금도 아깝게 느껴진다. 먹을 걸 보면 남기지 못하는 습관 덕분에 늘 폭식을 하는데, 최소 배달요금에 맞춰서 주문하면 아마 며칠에 나눠서 먹는 게 아니라 단번에 다 먹을 게 뻔했다. 


독립한 지 세 달이 넘은 어제, 처음으로 배달 음식을 주문했다. 그동안은 배달비가 아까워서 포장 주문으로 세 번 정도 먹은 게 전부였다. 배달 음식을 주문한 건,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배달 음식 앱에서 새로 나온 배달 서비스 쿠폰을 주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동안 먹고 싶던 즉석떡볶이를 주문해서, 집에 있는 라면까지 넣어서 푸짐하게 먹었다. 


최근 들어서 가장 많은 양을 단번에 다 먹었다. 남기면 음식물쓰레기가 된다는 생각으로, 평소 같았으면 안 먹었을 야채들까지 싹 다 먹는다. 음식물쓰레기를 만드는 것보다는 편식도 안 하고 이게 낫다고 믿어본다. 그런데 폭식이야 말로 정말 안 좋은 게 아닐까. 


어제 하루 배달 음식을 먹고 나니 배달 음식이 땡긴다. 이것이 탄수화물의 힘일까. 찾아보니 오늘은 피자를 방문 수령으로 주문하면 반값이라고 한다. 일주일 동안 안 팔려서 주기적으로 가격을 내렸던 베개를 중고거래로 팔고, 피자집으로 향한다. 반값이니 사이드도 시키는 게 이득이라는 생각으로 피자 한 판에 치킨까지 주문한다. 집에 도착해서 피자 반판에 사이드로 치킨을 모두 먹어버린다. 주말 내내 폭식이다. 


"배달 음식은 가끔 먹어".


이제 배달 음식을 먹었으니, 배달 음식을 먹은 적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확실히 배달을 해서 먹으면 편하고, 할인 중인 음식을 주문하면 가격도 괜찮은 편이다. 배달 음식을 안 먹는다고 해봐야 냉동식품을 먹을 거다. 물론 건강에는 둘 다 썩 안 좋겠지만, 냉동식품이 좀 더 싸긴 할 거다. 가성비 인간은 가격 앞에서 또 흔들린다.


그저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의 선택지 하나 늘었다고 가볍게 생각하면 될 텐데, 가득 차버린 위만큼이나 생각이 많아진다. 매일 배달 음식을 먹으면 생활비가 남아나질 않겠다, 이렇게 폭식하면 건강검진 결과서에 나온 체중감량 요망이라는 경고 메시지를 무시하는 게 될 텐데, 11월 대장내시경에서 안 좋은 결과를 보고 싶어서 안달 난 건 아닐까, 이런 류의 걱정들. 


맛있고 편했다. 그러나 마냥 행복해하기에는 양심에 걸리는 게 조금 있다. 하루 세 끼의 밥을 먹는 일상이지만, 매 순간의 선택에 생각이 많다는 건 영 피곤한 일이다. 하루 한 끼는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걸 먹자. 이 정도 규칙만 정해두고 나머지는 좀 자유로워지기로 해본다. 오늘 피자를 수령하러 가는 길에 봤던 수많은 식당에서 직접 식사를 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거다.


그저 내가 한 끼를 먹는 선택지 중에 배달 음식이라는 당연한 선택지 하나가 늘었다고 생각하자. 배달 음식에 맛 들려서 과소비하고 건강이 나빠진다느니 하는 그런 걱정까지 갈 필요 없이. 의미 부여를 매 순간 하는 내게, 의미 부여는 '맛있다'나 '건강하다' 정도에만 써먹기로 한다. 


이제 나도 가끔은 배달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강박 대신 편리하게 생각하기.



*커버 이미지 :  Ernst Schiess 'Table After The M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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