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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Jul 19. 2021

자취생은 다 계획이 있다, 현실에 처맞기 전에는

독립 전 계획했던 것과 현실의 괴리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한 대 처맞기 전까지는."


권투 선수 마이크 타이슨이 했다는 저 말이 자주 떠오르는 요즘이다. 독립 전에는 나름대로 계획했던 것들이 많다. 그야말로 '로망'으로 넘쳐났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봐야지 싶었다. 대부분은 그 계획을 비웃었다. 타고난 반골 기질로 '보란 듯이 잘 살아야지' 싶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보편적인 경험이란 결코 무시할 것이 못 된다. 내 눈에 '왜 저렇게 많은 걸 포기하고 살지' 싶었던 건, 다 이유가 있다. 역시 경험해보지 못한 이가 옆에서 이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건 쉽고 무지한 일이다. 


인테리어


인테리어에 전혀 관심이 없었으나, 막상 내가 온전히 꾸밀 공간이 생기니 그 공간이 예쁘면 좋겠다고 욕심을 부리게 된다. 이는 지금 생각해봐도 도둑놈 심보라고 할 수 있다. 평소에는 인테리어에 전혀 관심도 없었으면서, 벼락치기로 독립을 앞두고 급하게 인테리어 관련 정보를 수집해본다. 독립이라는 거대한 이벤트 앞에서도 이렇게 벼락치기를 하게 될 줄이야. 


입주 전에 가구 배치를 위해 방문해서 실측을 해보았다. 실측은 했지만, 막상 열심히 실측한 정보를 바탕으로 가구를 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대책 없이 입주하고, 없는 대로 살았다. 본가에서 들고 온 옷이 든 상자 위에서 라면을 먹고, 책상이 없어서 컴퓨터를 바닥에 두고 사용해서 목과 허리가 욱신거렸다. 


이케아에서 산 가구들도 '당장 필요해서' 산 것들이지, 심미적인 부분은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덕분에 '필요한 것들'은 있지만, '예쁜 것들'은 없는 공간이 되었다. 실용적이고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한 공간을 꿈꾸었지만 그렇지 않다. 


앞으로 하나하나 개선해나가야지, 라는 생각을 한지 한 달이 지났다. 결국 이렇게 전세 계약 만료까지 살게 될까. 오늘은 꼭 수납장이랑 책상 새로 알아봐야지,라고 생각한다. 생각만 한다.


식사


"나는 요리를 정말 해보고 싶어."


지금 생각해보면 가증스러울 만큼 뻔뻔하게도 이런 소리를 주변에 하고 다녔다. 독립하면 가장 하고 싶은 것으로 요리를 첫 손에 꼽았다. 그러나 지금은 먹고 싶은 게 생기면 냉장고에 쟁여둔 냉동식품부터 살펴보고, 칼 대신 에어 프라이기를 찾는다. 


식사 관련해서 스스로 약속한 것이 있는데 하나는 라면 덜 먹기이고 또 하나는 배달 음식 덜 먹기이다. 예전에 지방에 잠깐 있을 때 일주일 내내 정말 24번의 끼니를 모두 라면만 먹은 적이 있다. 그 당시 몸이 정말 볼품없이 변하고, 건강이 상하는 걸 느꼈다. 덕분에 지금도 컵라면은 안 먹는다. 그러나 라면에 대한 애정은 여전해서 끓이는 라면은 입주하고 나서 종류별로 사서 찬장에 가득 채워 두었다. 예전의 기억 덕분인지 라면은 진심으로 덜 먹고 있다. 일주일에 1번 정도? 24번에서 1번으로 줄어든 건 혁신적인 변화가 아닐까.


배달 음식의 경우에는 두 달 동안 세 번 정도 먹었다. 세 번 모두 정확히는 포장 주문이었다. 일단 배달비가 아깝기도 했고, 배달 음식을 매일 먹으면 건강도 건강이지만 돈을 너무 많이 쓰게 될 것 같았다. 몇 달 전만 해도 심심하면 배달 앱을 보면서 시간을 보낼 정도였으나, 지금은 이 동네에 배달 음식이 뭐가 있는지도 잘 모른다. 문제는 배달 음식뿐만 아니라 식당도 뭐가 있는지 잘 모른다는 거다.


재택근무 활성화로 집에서 끼니를 깨우는 경우가 많은데, 요리를 시도하지 않은 게 아니다. 첫 시도는 호기롭게도 스테이크였다. 엄마의 손맛이 좋으니 나도 요리를 단숨에 잘할 거라는 오만과 편견으로 무장한 채 유튜브를 찾아보았다. 백종원부터 고든 램지까지 다양한 영상을 보고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레시피를 정리했다. 그렇게 미리 사둔 스테이크 고기에 기름과 소금을 적당히 시즈닝 하고 구웠다. 


결과적으로 스테이크는 느끼하고 짜게 완성되었다. 느끼하거나 짜거나 둘 중 하나만 되는 것도 실패인데, 어떻게 둘 다 느껴지는 엉망의 상태가 된 것일까. 아마 필요 이상으로 기름과 소금을 많이 했기 때문이 아닐까. 게다가 스테이크를 굽던 기름 위에 김치까지 구워서, 김치조차 짜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구운 게 아까워서 꾸역꾸역 먹었다.


맛없는 걸 억지로 먹는 건 내 삶에 더 이상 없기를 바라면서도, 그게 내 요리라는 게 슬펐다. 스테이크를 하면서 이웃에 사는 지인이 준 감자와 양파로 감자채볶음을 했는데, 그건 꽤나 그럴듯했다. 좋은 일은 금방 잊고, 나쁜 일은 오래 생각하는 내 기질 때문인지 스테이크의 실패만이 마음에 깊게 남았다. 


며칠 뒤에는 알리오올리오를 해 먹으려고 재료까지 다 적어두었는데, 갑자기 요리에 대한 열정이 사라졌다. 바닥과 벽은 스테이크를 굽느라 난리가 났고, 냄새는 잘 빠지지도 않았다. 바닥을 소주로 닦아야 한다는 검색 결과를 보며, 요리에 대한 열정이 있던 자리에 핑계가 늘어난다. 요리를 하기엔 우리 집은 너무 좁고, 오히려 이렇게 해 먹는 게 더 비싸고 낭비야. 


과연 다음 요리는 언제쯤? 생각만 하며 요리 재료 대신 해동 후 먹을 수 있는 냉동식품을 구입한다.


라이프스타일


퇴근 후에는 집 대신 카페를 가서 작업을 하는 거지. 원래 데스크톱을 사려고 했는데 노트북을 사서 좀 활동적인 사람이 되려고. 무엇인가 배우러 가기도 좋은 동네이니 이것저것 배우면서 바쁘게 지내야지. 매일 산책으로 가까운 한강을 걷는 거야. 그렇게 하면 생각도 정리가 되겠지.


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리고 난 집이다. 코로나 시기에 집에 있는 건 바람직한 자세이니 좋은 거라고 합리화를 해본다. 게다가 지금은 무척이나 덥고 습하고 갑작스러운 비가 온다. 이런 날씨에 나간다면 빨래가 늘어나고, 내 삶의 질이 떨어질 것이다. 


이건 코로나가 가실 때쯤 생각해보겠다. 나는 모범 방역자니까.



현실한테 너무 처맞지 않고, 다시 우뚝 서서 나의 로망들을 실현할 수 있기를. 



*커버 이미지 : August Malmström 'The Horse-Fight At Hlidaren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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