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 Jul 22. 2021

먼저 가볼게,냉동 족발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부재 중일 때 냉동식품이 도착했다면

요리는 요원하다. 유튜브로 요리 영상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역시 공간이 넓어야 요리를 잘하는군. 저들이 요리하는 공간은 왜 저리 넓은가. 내가 요리할 수 있는 공간은 왜 이리 좁은가. 역시 집이 넓어야 하고, 그러려면 돈이 많아야 하고...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서 그런지 모든 걸 삐딱하게 본다. 어쨌거나 요리와는 멀어진다. 


요리와는 멀어도, 하루 세 끼는 먹어야 한다. 먹는 것을 통해 보상심리를 채우곤 한다. 기분이 안 좋은 날에는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 먹는다. 기분이 너무 좋으면 그 좋은 기분을 유지하려고 먹는다. 즉, 매일 열심히 먹는다. 


코로나 때문에 외출도 못한다. 먹는 걸 좋아하지만 혼자서 맛집을 돌아다닐 정도의 열정은 없다. 포장하러 나갈까 하다가도 포장할 기력이면 그냥 설거지도 안 할 겸 그곳에서 먹고 오는 게 낫겠다 싶다. 이렇게 생각이 많을 때 보면, 내가 먹는 것을 어마어마하게 좋아하는 건 아닌 걸까.


그러므로 답은 냉동식품이다. 요즘 하도 냉동식품을 검색하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SNS는 나를 파악하고 열심히 광고를 보여준다. 그중에 눈에 들어온 건 '냉동 족발'이다. 족발은 먹기 힘든 음식이다. 일단 비싸다. 게다가 1인분 족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전에 온라인으로 족발을 주문했는데 가격 대비 괜찮게 왔던 게 떠올랐다. 가격비교를 하도 해서 이젠 비교에는 제법 도가 터서, 리뷰들까지 다 살피고 족발 하나를 선택한다. 배송비를 생각하면 여러 개 시키는 게 낫다. 냉동 족발을 3개 주문한다.


'택배 도착 예정'


오늘은 출근을 했는데, 재택근무와 함께 주 1회 출근 중인데 왜 하필 오늘 택배가 도착한다는 걸까. 족발 말고 이후에도 광고들에 넘어가서 주문한 백순대 등, 바로 냉장고에 넣어줘야 할 것들이 떠올랐다. 내가 부재하면 녹아버릴 것들이 아른거린다. 이런 날이면 반차라도 내고 싶다. 낮에는 바깥 온도가 35도를 넘는다. 지금 내게는 한 끼 한 끼를 맛있게 먹는 게 무척이나 중요하다. 애석하게도 오랜만에 출근한 만큼 할 일들이 넘쳐난다. 마음 한 구석에 계속 냉동 족발이 남아있다. 몸은 뜨거운데 마음이 차다.


'택배 도착'


3시에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가 온다. 5시에 퇴근이라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아이스팩이 분명 함께 들어있겠지만 녹으면 어쩌지. 대부분의 냉동식품은 한번 해동되고 나면 다시 해동해서는 안 된다고 적혀있다. 다시 냉동시킬 때 박테리아가 생긴다고 들은 것 같다. 엑셀 파일을 만지면서도 냉동 족발을 떠올린다. 집에 도착했을 때, 나의 냉동 족발은 무사할까.


"바빠요?"


퇴근을 앞에 두고 갑자기 일이 생긴다. 거절할 권한 따위는 없으므로 일을 해나간다. 스트레스가 가득 쌓인 채로 퇴근 시간보다 늦게 퇴근한다. 평소였다면 별생각 없이 집에 가서 출근해서 먹은 점심을 떠올리며 양심상 바나나를 먹었을 텐데, 기분이 안 좋으므로 맛있는 거 먹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배달 앱을 켜볼까 하다가, 냉동 족발의 상태를 살펴보고 수명이 위태로우면 그것을 먹기로 한다. 


"나 일단 집부터 먼저 가볼게. 냉동 족발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친구가 동네에 왔다고 보자고 하는 연락에 답장을 하고 집으로 왔다. 족발이 우뚝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친구 입장에서는 족발에게 진 기분일까. 그러나 내가 아니면 족발을 구원해 줄 이는 없다. 사람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많지만, 족발에게는 나뿐이다.


집에 도착하니 냉동 족발이 있다. 스티로폼 안에 냉동 족발 3개와 아이스팩이 있다. 아이스팩은 이미 다 녹아서 물이 되었다. 냉동 족발은 얼었던 시절이 있었나 싶은 만큼, 마치 자연해동한 것처럼 녹아있다. 일단 회생을 시켜야 하므로 냉장고에 넣는다. 냉동실에 넣는 건 안 좋다고 하니, 냉장고에 넣는다. 


하나를 우선 꺼내서 에어프라이어로 익힌다. 육안으로 보기에 상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얼려서 왔을 텐데, 아무리 더워도 몇 시간 만에 다 녹지는 않을 테니까. 먹기로 결정한 이상 긍정적으로 생각해본다. 내 입에 부정적인 기운을 넣고 싶지 않다. 


걱정과 달리 족발은 맛있었다. 화난 기분을 진정시킬 만큼 식감도 좋았고 향도 좋았다. 해동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족발을 3일 내내 먹게 될 텐데, 이런 맛이라면 충분히 먹을 수 있다. 그렇게 내가 주문해서 먹을 수 있는 괜찮은 냉동식품 목록에 냉동 족발을 추가한다.


많이 기다렸어?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서 혼잣말도 늘었다. 아마 이렇게 가다 보면 나중에는 냉동 족발에게 말을 걸게 되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덜 외로울까, 아니면 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자책하게 될까. 이러나저러나 냉동 족발은 맛있고, 냉동 족발이 녹지 않게 하는 것 또한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어떤 존재에게 필요하다는 건 꽤나 부담되는 일이지만 뿌듯한 일이다. 다음엔 냉동 족발이 기다리지 않게, 날짜를 잘 보고 주문해야지.



*커버 이미지 : Ignaz Raffalt 'A Summer Day Outdoor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