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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Jul 02. 2021

뻣뻣하고 살찐 남자도 발레가 가능한가요?

발레를 시작하다

"발레를 하고 싶어".


주변 사람들은 알고 있다. 내가 발레를 하고 싶어 한다는 걸. 또한, 내가 이렇게 뱉어놓고 하지 않은 것들이 꽤 많다는 것도. 


발레를 접한 건 이전 직장에서였다.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취재 차원에서 발레 원데이 클래스를 들었다. 당시 원데이 클래스는 돌아보면 발레보다는 스트레칭이 대부분이었다. 그때 쓴 글은 남아있지만, 그때의 감정은 꽤나 희미해졌다. 대략 계산해보면 천일 정도 지났다. 


"발레를 하면 내 몸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3년 전 1시간의 수업이 내게 남긴 가장 선명한 순간은 내 몸의 선을 발견한 순간이다. 몸 쓰는데 젬병인 내게 몸은 그저 살기 위해 움직이는 용도만 간신히 수행 중이다. 그런데 발레 수업을 하면서 거대한 거울 앞에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팔을 뻗은 순간에는 내 몸에서 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에게도 선이 있긴 있구나. 아름다움의 정도를 떠나서, 선이 있다는 게 그 자체로 신기했다. 내 몸도 이런 동작들을 할 수 있구나. 


나는 나의 몸을 좋아하지 않는다. 안 좋은 점들부터 보인다. 그런데 발레를 하다 보면, 이런 내 몸도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내 몸의 선을 발견하고, 좋은 부분을 발견하다 보면 내 몸을 아낄 수 있지 않을까. 스치듯 지나간 생각이었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품고 있었고, 주변에 말을 하고 다녔고, 결국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남자도 다닐 수 있나요?"


6월을 열흘쯤 남기고, 하반기에는 뭔가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에 발레를 떠올렸다. 지도 앱을 켜서 '발레'라고 검색하니 꽤 많은 스튜디오들이 보인다. 리뷰가 좋은 스튜디오를 찾았고 다음날까지 살짝 고민을 하다가, 문자를 보냈다. 남자도 다닐 수 있나요. 당연히 답은 예스. 뻣뻣하고 살찐 남자도 가능한가요. 괜히 말이 길어진다. 결국 퇴근하고 방문하기로 한다.


"남자분들도 생각보다 많아요."


방문한 스튜디오에서 내가 과연 발레를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가득해서 질문을 던졌으나 긍정적인 답변들이 따라왔다. 삐딱한 나는 스튜디오 입장에서 안 좋은 답을 해줄 리 없으니 괜한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민을 조금 했으나 지금 여기서 등록하지 않으면 미루다가 다시 안 할 것을 알기에 등록을 하기로 한다. 주 3회로 등록하고, 개강은 7월 1일이다. 


"나 발레 등록했다!"


발레를 한다고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해서 양치기 소년이 된 것 같았기에, 가까운 지인들에게 발레를 등록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래 놓고 한 달 만에 그만두면 어쩌지.


"남자 탈의실은 어디 있나요?"


7월 1일이 되었고, 퇴근 후에 발레 스튜디오로 갔다. 탈의실에는 나 말고도 남자 회원이 있어서 괜히 말을 걸었다. 이 발레 슈즈는 왼쪽 오른쪽 구별이 있나요? 저는 유연성이 없는데 어쩌죠? 회원 분은 본인도 다닌 지 한 달밖에 안 되었다면서, 그래도 재밌다고 덧붙여 대답했다.


수업이 진행하는 강의실에 들어갔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사람들을 따라 매트를 깔고 스트레칭을 했다. 다 모이고 보니 거의 대부분 발레복을 갖춰 입고 있다. 자유 복장이라는 것도 내가 발레를 등록한 이유 중 하나였다. 아직 내 몸을 드러내기에는 부끄러움이 더 크다. 


스트레칭을 하는데 나만 못하는 동작들이 많았다. 평소에 내 자세가 얼마나 엉망 인지도 깨닫게 된다. 글을 쓰는 지금도 앉은 자세가 너무 삐딱해서 괜히 고쳐 앉아 본다. 거북목부터 틀어진 골반,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 배까지, 내가 가진 발레에 대한 편견과는 맞지 않는 몸이다. 


스트레칭만으로도 땀범벅이 된 뒤에 동작들을 배웠다. 발레 바를 잡고 손과 발로 몇 가지 동작을 배웠는데 단어가 기억이 안 난다. 강사분을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과부하가 일어났다. 80분의 수업이 끝나고 나니 땀범벅이 되었다.


며칠 전까지도 무기력함이 너무 강했다. 무기력을 떨치기 위해서 뭐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발레를 시작했다. 발레를 시작한 김에 브런치에도 글을 오랜만에 쓴다. 고작 한번 했지만, 발레를 한 소감을 묻는다면 '재밌다'와 '흥미롭다'이다. 올해 들어서 내가 내 몸을 이렇게 오래 본 게 처음이다. 평소에 거울도 잘 안 보는데, 거울로 평소에 하지도 않는 동작을 바라보고, 쓰지도 않는 근육을 살펴본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를 들여다봐야 할 텐데, 말만 했을 뿐 이제서야 제대로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역시 말보다는 몸이 더 믿을 만하고 중요하다. 


집에 와서 샤워를 마치고 괜히 아까 했던 동작들을 해본다. 어떻게 하면 자세가 예뻐질까. 발레에서 중요한 건 중심을 잡는 일이다. 발레에서 중심을 잡는 법을 배운다면, 그 태도를 삶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과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지금 내가 하는 일에 잔뜩 의미부여를 해본다. 


7월이 시작되었고, 그래도 뭔가 새로 시작했고, 내가 평소에 하자고 마음먹었던 것이어서 더 즐겁다.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고, 최종 목표는 몸을 만들거나 공연을 하는 게 아니다. 그저 내가 내 몸을 자주 들여다보고 내 몸을 사랑하고 싶다. 나는 나를 돌아보고 좀 더 아끼고 싶다. 그동안 그것을 너무 안 하고 소홀했으니까. 발레를 하는 동안 타인을 의식하느라 정신없을 줄 알았는데, 나를 살피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었다. 


나를 좀 더 사랑하게 되었어. 내가 원하던 발레의 후기를 말할 수 있기를. 부디!



*커버 이미지 : 영화 '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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