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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Jul 14. 2021

부모님 댁, 가끔 가고 짧게 머무는 곳

살던 곳에서 잠시 머무는 곳으로

메모장에 '본가에 갈 때 챙길 것'과 '본가에서 가져올 것'이라는 이름으로 목록을 정리해둔다. 평소에도 생각이 나면 적어두었고, 오늘은 본가에 다녀왔다. 본가에서 빌려왔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반납하기 위해 챙겨서 본가로 갔다. 


내 외출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출근은 집에서 서쪽으로 가야 하는데, 본가로 가려면 동쪽으로 가야 한다. 이제는 출근길에 몇 번 버스를 타야 하고, 지하철을 탈 때 몇 번 플랫폼에 서야 환승이 빠른지 외웠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내가 살던 본가였기에, 길을 잊을 리는 없다. 다만 환승하는 역을 잠시 헷갈렸다.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부대찌개 괜찮아?"


출발할 때 동생에게 연락해서, 미리 음식 배달을 시켜둔다. 집에서 혼자 먹기 힘든 것 중에 부대찌개가 요즘 따라 많이 생각났다. 본가에 있을 때 자주 먹던 음식이기도 하고. 사리까지 듬뿍 추가해서 주문한다. 배달 앱에 설정된 기본 주소가 독립한 집이라, 본가로 주소를 바꿔서 주문한다. 가족들과 살 때는 편하게 식사하기 위해 배달을 정말 자주 시켜먹었는데, 독립한 후로는 배달을 시켜서 먹은 적이 없다. 독립하고 더 건강해지고 싶어서인데 한 선택인데, 몸이 좋아졌는지는 건강검진을 받아야 알 것 같다.


역에서 내린다. 1호선은 언제 와도 지긋지긋하게 느껴진다. 평생을 1호선에서 살았고, 이곳을 늘 탈출하고 싶었다. 독립을 고려할 때 1호선을 제외하고 골랐을 정도다. 오랜만에 온 1호선은 내가 기억하는 것과 비슷한 풍경이다. 독립한 집에서 본가로 가까워질수록, 지하철을 탑승하는 이들의 연령대가 오르는 게 느껴진다. 나 또한 1호선을 타고 오가며 나이를 먹었다. 1호선에 대한 감정은 애증에 가깝다. 


역 앞에 열심히 공사 중이던 오피스텔이 완성되었다. 공사 중이라 지나가기 힘들었던 골목이 이제 확 트여서 넓어졌다. 누군가는 자신이 살던 곳을 지긋지긋하다고 표현하며, 독립해서 이 오피스텔에 입주할지도 모른다. 역세권 오피스텔이니 월세나 전세나 비쌀 것 같다. 


독립하기 전에 당근마켓으로 헬스 정기권을 팔았는데, 정기권을 구매한 사람은 독립해서 이 동네에서 막 살기 시작한 사람이었다. 동네의 장점을 뭐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서, '조용해서 좋아요'라고 답했다. 조용한 건 사실이니까. 내 마음은 그리 조용하지 못했지만.


"비밀번호 뭐였지?"


집에 도착했는데 비밀번호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손이 기억하는 대로 누르는데 맞지 않는다. 혹시 몰라서 메모장에 적어둘까 하다가 말았는데, 내 기억력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다. 결국 집 호수와 벨 버튼을 눌러서 열어달라고 한다. 집에 들어와서 동생에게 '이거 아니냐?'라고 물으니 숫자 하나가 틀리다는 답이 돌아온다. 숫자 네 개가 모두 틀렸으면 심각한 수준의 기억력일 텐데, 한 개만 틀려서 다행이라고 안도해본다.


"이제 네가 이 방에서 자냐."


동생은 내 방에 누워있다. 이제 나는 독립했으니 '내 방'이라는 표현도 틀린 표현일 거다. 내 방이었던 곳. 독립하기 몇 달 전에 에어컨과 암막 커튼을 설치했다. 덕분에 동생과 어머니가 번갈아가면서 내 방에서 잔다고 한다. 미리 설치해두고 나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독립한다고 챙기지 못한 것들을 가방에 챙겨본다. 독립하면 열심히 연주하겠다고 생각해서 들고 온 신디사이저는 아직 꺼내지도 않았다. 신디사이저 받침대를 가져오려다가 다음에 가져오기로 한다. 여름 이불 여분이 필요해서, 집에 남는 게 있다고 해서 챙겨본다. 반찬가게에서 사 온 콩자반 삼천 원어치를 한 달 넘게 먹고 있기 때문에, 반찬은 독립할 때부터 안 가져가겠다고 못박아두었다. 


본가에 올 때마다 내가 필요하다고 이것저것 가져오는 걸 하고 싶지 않다. 이미 내가 살면서 빚진 게 너무 많으므로, 오히려 내가 양손 가득 도움이 될 걸 가져와야 될 상황이다. 오늘 내가 가져온 건 고작 유산균뿐이지만.


"밥도 잘 안 먹을 텐데 이거도 좀 먹어."


배가 부르다고 해도 엄마는 자꾸 이것저것 챙겨준다. 복숭아와 요구르트를 먹는다. 독립하고 영양제를 열심히 먹느라 유제품을 아예 안 먹고, 과일도 사과와 바나나만 먹었다. 충분히 내가 챙겨 먹을 수 있는데, 귀찮아서 하지 않은 선택을 집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취한다. 지금 맛있게 먹어도 집에 돌아가면 귀찮다고, 가성비 안 좋다고 선택하지 않겠지. 이런 걸 고치려고 나왔는데 쉽지 않다.


"씻어도 되나?"


넌 뭘 그런 걸 물어보냐, 당연한 걸. 가족들과 함께 살 때도 늘 당연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자주 묻는 편이었다. 이거 먹어도 돼? 이거 써도 돼? 그때마다 부모님은 뭘 그런 걸 묻냐고 한다. 어쩌면 늘 거리를 두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타인에게 묻듯이. 


당연한 건 세상에 없으니까. 누군가 노력해서 만들어 놓은 거니까. 늘 깨끗하게 잘 접혀있는 수건들처럼. 빨래하고 말리고 접어서, 공백 없이 늘 자리에 놓여있는 수건은 노력이 만든 거다. 매주 빨래를 할 때마다 본가에서 매번 당연하다는 듯이 집어서 샤워할 때 쓰던 수건들이 떠오른다.


"내일 출근이라 빨리 갈게요."


벌써 가냐. 지금 제일 더운 시간인데 가네. 필요한 거 있으면 좀 가져가. 엄마의 말이 이어진다. 얼마 전까지 나의 집이었던 공간이지만, 이젠 이곳보다 더 편한 공간이 있다. 다음 달에 엄마와 동생의 생일쯤에 다시 오게 될 텐데, 그때는 아마 아버지까지 모여서 식사를 할 거다. 


엄마는 얼마 전에 허리가 아파서 주사를 맞았고, 아버지는 가슴 쪽에 혹 같은 게 생겨서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했다. 같이 살 때는 필요할 때 말고는 아예 전화를 안 했는데, 이제는 방문보다 통화의 횟수가 더 많을 거다. 물론 그렇다고 통화가 엄청 많은 것도 아니고, 의무감에 하는 전화도 많겠지만. 수술하고 좀 괜찮으신가요. 마치 회사 상사에게 하듯이 전화하는 나를 발견한다. 


식탁에서 밥을 먹는데 엄마랑 눈을 마주치는 게 괜히 어색하다고 느껴졌다. 엄마는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나와 눈을 마주치는 게 당연하게 느껴졌을 텐데, 눈을 피하는 내가 섭섭했을까. 떨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왜 어색하다고 느낀 걸까. 가족도 거리를 둬야 더 건강한 사이가 된다고 믿는데, 어느 정도의 거리가 좋을까. 


'엄마, 지금 정도의 거리는 어때?'


엄마에게 직접 묻지는 못할 질문.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한 때 나의 집이었던 곳이자 지금도 언제든 돌아갈 수 있지만 돌아가지 않을 곳에서, 나의 새로운 집으로. 본가에서 집까지 몇 킬로나 떨어져 있는지 모르지만, 멀어지고 있다. 멀어져야 마음은 건강해질 거라는 생각으로, 지도 앱에 표시된 내 위치가 본가에서 점점 멀어진다.




*커버 이미지 : Vilhelm Hammershøi 'A Room In The Artist’s Home In Strandgade, Copenhagen, With The Artist’s W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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