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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Jul 13. 2021

회사 근처 말고 살고 싶었던 동네에 살래요

동네를 선택하는 기준

코로나로 인해 여행 앱을 지우고 나니 핸드폰 화면에 남아있는 앱이 얼마 없다. 대신 독립을 준비하면서 부동산 앱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부동산 앱을 실행해서 동네를 설정해서 본다. 어차피 내게 정해진 예산은 한정되어 있기에, 볼 수 있는 매물도 많지 않다.


"회사 근처로 알아봐야죠."


처음 독립을 생각하고 나서는 회사 근처로 집을 알아보았다. 회사에서 걸어갈 수 있는 게 최선의 조건이었다. 재택근무를 시작한 이후로 교통비가 줄어든 걸 느꼈기에, 고정지출인 출퇴근 교통비를 줄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근처는 좋은 동네다. 다만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는 거의 집이 없었다. 딱 한 군데 집을 봤는데, 그 집은 조건은 나쁘지 않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아마 이 동네 자체가 썩 마음에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회사에서 걸어갈 거리에서 찾기는 힘들기 때문에 회사의 옆옆 동네 정도 되는 곳을 알아보았다. 어느 동네에 가도 못 볼 만큼 좋은 조건의 집들이 많았다. 걱정이 많은 내가 유튜브에서 열심히 찾아본 '전세 사기'가 이 동네에서 자주 일어난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좋은 조건인데 가격이 저렴하면 이유가 있는 거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집은 그냥 안 보기로 한다. 


어차피 버스나 지하철을 타야만 출근할 수 있는 거리의 집들이다. 그런 집들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면 선택할 만하지만, 교통비를 써야 한다면 거리가 있더라도 차라리 내가 그동안 살고 싶어 했던 동네를 가는 게 낫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회사 근처에서 살면, 내 삶의 중심이 회사가 될 텐데 그게 싫었다. 가뜩이나 퇴근하면 회사원 모드의 전원이 잘 안 꺼져서 힘들어하기에, 가까운 건 여러모로 내 삶의 질에 있어서도 좋지 않을 게 분명해 보였다. 


게다가 회사 근처 동네는 서울 전체로 봐도 외곽이기에 내가 그동안 주로 놀러 다니던 동네와도 거리가 멀다. 정말 회사만 바라보는 상황이 되는 거다. 집에만 처박혀 있을 생각을 하면 조건도 괜찮지만, 애초에 독립을 하는 이유는 많이 돌아다니는 성향으로 바뀌기 위해서이다. 내 취향을 발로 뛰면서 확인하고 싶어서 하는 독립이니까. 


'내가 살면서 제일 많이 갔던 동네가 어디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기로 하고 나서, 내가 여태까지 가장 자주 갔던 동네를 떠올려보았다. 무엇인가를 배우러 갈 때도, 친구를 만날 때도, 데이트를 할 때도 가장 많이 방문했던 동네. 그러자 자연스럽게 한 동네가 떠올랐다. 내가 그동안 자주 왔던 게, 내게 맞는 동네라는 가장 큰 증거일 거다.


그렇게 내가 가는 부동산은 회사 서쪽에서 회사 북쪽으로 위치가 바뀌었다. 교통편이 그리 편할 동네는 아니고, 회사에 가려면 무조건 두 번 이상은 갈아타야만 한다. 그래서 내 생활의 중심이 회사가 아니라 내가 살고 싶었던 동네라는 게 좋다. 아니, 애초에 이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살고 싶은 동네에 살 수 있는 기회는 살면서 몇 번 안 와."


내가 어떤 동네에서 살지 고민할 때 이렇게 말해준 지인들이 많았고, 지금 와서는 그 이유를 알겠다. 남들이 뭐라든 내가 살고 싶은 동네면 된다. 사람들은 오지랖을 좋아해서 동네 이름만 말해도 그 동네가 별로인 이유를 말하겠지만 상관없다. 내가 좋으면 그거야 말로 가장 확신할 이유니까.


그래서 난 무척이나 만족한다. 회사와 적당히 멀어서 오히려 더 좋다. 회사와 거리를 두고 내 삶에 집중해본다. 내가 그렇게 '살고 싶던 동네'가 '사는 동네'가 되었다. 희망이 현실로 되는 경험을 동네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겪는다. 


시작부터 느낌이 좋다, 내가 사는, 나의 동네.



*커버 이미지 : Harry Shokler  'The Town Pump (Small Town Activ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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