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 Jul 04. 2021

나의 즐거운 집, 다이소와 이케아의 끔찍한 혼종

'오늘의 집'을 꿈꾸지만 다른 현실

집 계약이 끝나고 나서 가장 열심히 본 어플은 '집꾸미기'와 '오늘의 집'이다. 인테리어는 내게 늘 막연한 일이다. 독립하고 살게 될 집이 큰 집도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꾸밈'이라는 게 필요하다. 주변에는 자신이 머무는 공간을 열심히 꾸미는 이들이 많다. 인스타그램으로 보고 있으면, 사는 곳의 위치나 크기 같은 걸 떠나서 자신의 취향으로 공간을 꾸민 이들이 멋지게 느껴진다. 


본가에서조차도 언젠가 떠날 거라는 생각에 더 꾸밈에 관심이 없었는데, 독립한다고 과연 얼마나 꾸밀까 싶긴 했다. 방을 제대로 꾸며본 일이 없다. 책 욕심이 너무 많아서 침대와 책상을 제외하면 모두 책이었다. 그나마 있던 책장들도 책이 앞, 뒤, 옆으로 꽉꽉 채워져 있어서, 막상 원하는 책을 찾기도 힘들 지경이다. 누가 보면 책으로 가득한 창고에서 숙직하는 책 지킴이의 공간 같다. 


문제는 내가 구체적으로 어떤 공간을 원하는지도 영 감이 안 온다는 거다. 공간을 어떻게 꾸며야겠다고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내가 그 분야에 있어서 그리 욕심이 많은 사람도 아님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언젠가 떠날 집인데 열심히 꾸밀 필요가 있나, 하고 냉소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열심히 사냐'라는 류의 반박 앞에 무기력해지기에, 일단 좀 더 고민해보기로 한다.


내 성향을 살펴본다. 정리를 좋아하는 편이다. 이직한 지 1년이 넘은 사무실 책상 위에는 물건이 거의 없다. 누군가는 이제 막 입사했거나 곧 퇴사할 사람의 책상으로 볼 거다. 지저분해질 만한 요소는 애초에 추가하지 않는 편이다. 소품도 썩 좋아하지 않고, 흔히들 말하는 '예쁜 쓰레기'는 구경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독립하고 나서 가장 먼저 간 곳은 다이소다. 다이소에서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샀다. 집의 컨셉이 명확했다면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샀겠으나, 취향보다 실용을 택했기에 다이소를 간 거다. 다이소에서 가구를 팔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만큼, 다이소에는 참 많은 것들이 있다. 자취하는 친구들의 집에 가면 늘 목격했던 필수적인 아이템들도 보인다.


책상이나 수납장 등은 인터넷으로 따로 주문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친구가 이케아에 간다고 하길래 함께 가자고 했다. 생애 처음으로 간 이케아는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피부로 느낄 만큼 깔끔했다. 미리 적어둔 리스트에 따라 책상, 수납 카트 등을 샀다. 조립하는 것도 재밌었는데, 아마도 조립하고 치우는 그 정리의 과정이 좋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이케아에서 산 것들 대부분은 검은색이었다. 급하게 주문한 침대는 원목 무늬로 되어 있는데 이게 썩 잘 어울리지는 않는다. 이케아에서 산 것 중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는 책상은 하필 흰색이다. 무채색 계열로 맞춘 거라고 합리화를 해본다. 책상과 카트 위에는 다이소에서 산 다양한 생활용품들이 자리 잡고 있다. 


분명 각각 보았을 때는 꽤 그럴듯한 것들인데 다 배치하고 나니까 왜 이렇게 안 예쁜 거지.


이케아와 다이소의 끔찍한 혼종이다.


집들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지인들의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나는 왜 그렇게 열심히 본 '오늘의 집' 어플에 나오는 집처럼 아름다운 집을 만들지 못한 걸까. 이제 막 시작한 독립생활이니 감각이 부족한 거라고 믿어본다. 편의점보다 더 자주 가는 다이소와 다시 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이케아의 지분은 점점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이든 싹 다 갈아엎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자취생에게 그건 사치다. 있는 것들의 재배치를 통해 개선되기를 바랄 뿐이다.


목표는 '끔찍한 혼종'에서 '꽤 그럴듯한 혼종'이 되는 거다. 내가 꿈꾸던 모습의 집은 아니지만 있을 건 다 있는, 편한 집인 건 사실이다. 책상 위치를 바꾸자고 생각한 지 2주가 넘었는데 익숙해져서 계속 미루게 된다. 이러다 보면 전세 계약이 만료될 때까지 이렇게 살게 될까. 


이케아와 다이소에게는 죄가 없다. 심미주의와 실용주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내 취향이 문제일 뿐. 내 취향을 찾을 수 있을까. 취향을 찾아 열심히 돌아다녀야 하지만, 내내 집에 머물며 집안 풍경에 익숙해져 간다. 내가 사는 곳이 내 취향을 대변한다는 마음으로 '내일은 꼭 책상 위치를 바꿔야지'라고 생각하며, 일단은 자기로 한다. 



*커버 이미지 : Charles Demuth 'Bermuda No. 1, Tree and Hous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