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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Aug 28. 2021

엄마와 동생의 생일은 같은 달에 있다

집을 나와서 맞이한 엄마와 동생의 생일

2주 연속으로 주말에 본가에 갔다. 8월 14일은 엄마의 생신이고, 8월 22일은 동생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본가에 갈 생각을 자주 하지 않지만, 그래도 생일은 당연히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이후로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거의 없는 주말의 연속이라 그런지, 본가에 가는 것조차 내게는 큰 이벤트처럼 느껴진다.


사람을 만나는 일, 그것도 내가 가장 오래 봐온 사람. 마냥 편한 사이라고 하기에는, 이젠 마냥 붙어있기에는 살짝 눈치가 보이는 사이. 가족과의 건강한 거리감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이 생각 중이다. 아니, 딱히 생각할 시간을 따로 두지는 않고, 몸으로 느끼고 있다.


규칙처럼 가족을 챙기고 떠올리는 시간을 따로 두지는 않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가족에게 연락을 하게 된다. 오히려 붙어있었다면 못할 이야기들을 떨어져 있으니 속 편하게 하는 듯하다. 예전 같았으면 가족과 공유했을 범위의 이야기들 대부분이 나 혼자 감당할 이야기로 바뀌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머니 고생하셨겠다. 8월에 애 낳으시느라".


출산을 앞둔 선배에게 엄마와 동생의 생일에 대해 말하니, 무더운 시기에 만삭으로 사는 것의 고단함을 들려준다. 선배의 출산일도 9월로 예정되어있어서 더 그럴 거다.


내게 8월은 여름의 절정이자 엄마와 동생의 생일이 있는 달일 뿐, 엄마가 동생을 품고 살았을 시간에 대해 상상해본 적은 없다. 아마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을 거다. 지금처럼 어디 가나 냉방이 잘 되던 시절도 아니었고, 굳이 그런 환경적인 요소를 떠나도 임산부로 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 동생을 품고 있느라 당시 엄마의 8월은 유난히 더 덥게 느껴졌을 거다.


"생일 축하합니다!".


2주 연속으로 케이크에 초를 꽂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다. 내가 아이였을 때는 가족끼리 다 함께 노래방도 많이 갔었는데, 이제는 생일 축하 노래 말고는 노래를 부를 일이 없다. 노래방을 잘 가지 않는 어른으로 자라서, 나도 내 노래를 잘 모르겠다. 그저 엉망으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다는 것만 알 뿐이다.


엄마의 핸드폰에 늘 설정되어있던 컬러링도 사라진 지 꽤 되었다. 우리는 이제 서로의 노래 취향을 알지 못하고, 서로가 노래를 부를 때 어떤 박자와 음정을 가진지도 알지 못한다. 그저 가끔 듣는 안부로 추측할 뿐이다. 서로의 목소리가 만들어 낼 어떤 멜로디에 대해서. 유튜브나 멜론에서 그렇게 남의 플레이리스트는 열심히 찾아들으면서도, 가족들의 플레이리스트에는 별 관심이 없다.


"내 생일 때 봐요".


9월에는 내 생일이 있다. 4명의 가족 중 3명이 8월과 9월에 생일이 몰려있다. 생일을 요란하게 보내본 적이 없다. 내게 생일이란 가족끼리 함께 밥을 먹고 케이크에 초를 꽂아서 생일 노래를 부르는 게 최대치의 행사다. 외식을 하기도 힘든 시기라, 가족끼리 배달음식을 시켜서 먹기만 해도 좋을 거다.


내 삶에서 같은 집에 살면서 함께 밥을 함께 먹는 사이라는 의미의 '식구'는 우리 가족들 뿐이다. 식구와 생일을 보내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생일도 결국 맛있는 걸 먹고 기념하는 날이니까. 엄마와 동생의 생일을 근사하게 챙겨주지는 못하고, 밥과 케이크를 사고 용돈을 챙기는 정도이다. 그래도 프리랜서 시절에 비하면 양호해졌다고 합리화한다. 작년보다는 나은 올해의 생일이라고 믿으며, 매년 드릴 게 없어서 편지만 넣었던 봉투에 현금을 넣는다.


나와 동생은 각각 9월과 8월에 태어났으므로, 엄마가 나와 동생을 배 속에 품고 있던 시절의 막바지는 여름이었다. 엄마는 우리를 품고 있던 여름에,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서 어떻게 자라고 어떤 생일을 맞이할지 상상했을까. 우리가 자라서 엄마의 생일을 챙겨주는 미래를 그리기에는 당장을 생각하기도 벅찼을 거다.


나와 동생은 생일 촛불을 입으로 불어서 끄는 걸 좋아해서, 어릴 적에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번 생일 초에 불을 붙여주면 입으로 끄면서 박수를 쳤다고 한다. 그런 녀석들이 지금은 시큰둥하고 시시하게 생일 노래를 부르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어떤 생일을 원해?'


엄마와 동생이 너무 큰 스케일로 대답을 할까 봐 묻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내 기준에서 좀 더 공들여서 생일을 챙겨주고 싶다. 물론 그때도 맛있는 걸 먹고 케이크와 생일 축하 노래는 빠지지 않을 거다.


엄마와 동생의 생일이 끝나고 나니, 8월은 금방 끝을 향해 가서 여름의 막바지다. 너무 더울 때면 8월은 건너뛰고 싶지만, 그렇다면 엄마와 동생이 세상에 나올 수 없으니 8월의 여름을 견뎌본다. 같이 생일 케이크를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커버 이미지 : John Singer Sargent 'The Birthday Pa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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