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를 조립하다가
무엇인가를 조립하는 일을 좋아한다. 어릴 적에는 조립 로봇이나 레고를 특히나 좋아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조립하는 과정을 즐겼는지 완성된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때도 아마 지금처럼 완성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는 경주마처럼 살았으려나.
독립하고 나서 첫 가구는 이케아가 되었다. 친구가 차를 태워준 덕분에 편하게 이케아에서 가구를 사 왔다. 하나 같이 조립 가구라는 게 신기했다.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집에 오자마자 새벽까지 가구들을 하나하나 조립했다. 무엇이든 하나를 사고 나면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온다. 환경에 대해 엄청나게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쓰레기를 보고 있으면 걱정이 든다. 날씨를 봐서는 지구가 아픈 게 확실하다.
가구가 포장된 박스를 열어보니, 가구의 구성품과 함께 아주 작은 육각 랜치 같은 게 들어있다. 이 작은 육각렌치로 거대한 가구를 어떻게 조립하라는 걸까. 매뉴얼을 살펴본다. 예전에는 매뉴얼을 안 보고 무작정 조립하곤 했는데, 그러다가 오히려 모든 게 잘못되어서 처음부터 해야 할 때가 많았다. 매뉴얼을 만드는 이들도 얼마나 고생을 했겠는가. 회사에서 사용자가 매뉴얼을 잘 안 볼 거라고 전제하고 매뉴얼을 만드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괜한 상상과 함께 조립을 이어나간다.
거대했던 가구는 어느새 완성된다. 육각렌치가 자신보다 몇 배는 큰 가구를 완성시킨다. 다른 가구들도 마찬가지다. 각 가구를 조립하기에 적합한 작은 조립 도구가 함께 들어있다. 꽤나 큰 식탁을 조립하는데, 이렇게 작은 볼트로 어떻게 무게를 견딜까 싶다. 완제품이었다면 이런 생각을 안 했으려나.
화장실 안에는 수납장이 있다. 이게 잘못 무너지면 변기 위에서 죽겠다 싶을 때도 있다. 싱크대 위에는 찬장이 있다. 식기들과 라면 등이 가득 차 있다. 이게 앞으로 쏟아지는 날에는 설거지하다가 세상을 떠나게 될 거다. 청소하면서 살펴보면 이것들도 결국은 작은 볼트와 너트로 버티고 있다. 나의 안전도 결국 이 작은 것들이 책임진다.
내가 사는 이 집을 자세하게 뜯어보면 거대한 자제들이 볼트와 너트 같은 아주 작은 것으로 지탱하는 형태일 거다. 지금 나를 살아가게 하는 건 어마 무시한 업적이 아니라, 당장 먹을 수 있는 생수 한 통과 사과 한 알 같은 거다. 내 거대한 몸뚱이도 결국 아주 작은 것들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아주 작은 것에도 무너질 수 있다. 생각해보면 가구나 내 몸이나, 자세히 뜯어보면 아주 위태로운 형태일지도 모르겠다. 균형이 조금이라도 무너지면 큰 일 나지만, 걱정에 비해서는 제법 잘 버티는 구조.
가구를 조립하는 동안은 다른 생각을 안 할 수 있어서 좋다. 단순 노동을 좋아하는 편인데, 쓸데없는 걱정을 잠시나마 덜어내고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구를 다 조립하고, 분리수거까지 하고 나니 짙은 새벽이다. 내가 하는 작은 것들이 결국 거대한 것을 이룬다고, 가구 조립하듯이 살자고 글로는 쓰고 있으나 여전히 걱정이 많다.
조립한 가구들은 하나 같이 튼튼하다. 무게가 실려도 볼트와 너트가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별일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아주 작은 일들로 이뤄진 하루를 마무리한다.
*커버 이미지 : Georges de Feure 'Furniture Designs; Wardrobe, Chair, Bureau And Washst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