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 거리와 마음의 거리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이사를 하고 옆집을 보니 같은 학교 아이가 살고 있었다. 그 전에도 가깝게 지냈던 친구인데 이제 문을 열고 몇 발자국만 걸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가 된 거다. 그렇게 우리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늘 서로를 옆집 아이로 둔 채 살았다.
친구의 부모님은 오락실을 운영하셨고, 당시에는 오락실이 최고의 유희였고, 그중에서도 '킹 오브 파이터'와 '철권' 같은 격투 게임의 시대였다. 친구의 부모님은 오락실을 기웃거리는 나를 보면 몇 백 원씩 주곤 했다. 다른 아이들은 부러워하며 왜 내게 이런 특혜가 주어지는 건지 질투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말했다.
"나는 옆집에 사니까!"
우리 둘은 매일 서로의 집에 놀러 가며 매일 붙어 다녔다, 라는 후기를 남기게 될 거라고 생각했으나 전개는 내 예상과 달랐다. 막상 서로 가까워지고 언제든 볼 수 있는 거리가 되니 더 안 보게 되는 거다. 서로 동네 하나는 건너야 할 만큼 거리가 있을 때는 오히려 자주 놀러 갔는데, 코앞이 되니 왕래가 줄었다. 우린 왜 이렇게 된 걸까. 졸업할 때까지도 그게 의문이었다. 둘 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고, 고등학교도 다른 곳으로 진학하며 우리는 멀어졌다. 여전히 '옆집'이라고 하면 그 친구가 떠오르는데, 지금쯤 그 친구의 옆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내가 지금 사는 동네는 동네 이름만 말해도 '볼 게 많은 곳에 사는구나'라고 하는 곳이다. 그런데 막상 독립해서 '약속 장소'가 아닌 '거주지'가 되고 나니 전보다도 잘 안 돌아다니게 된다.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사실은 쉽게 모든 걸 미루게 만든다. 전에는 우리 동네에 없어서 못 먹었던 메뉴들도, 정작 이사 오고 나니 거의 안 먹는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은 다른 분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볼 수 있는, 할 수 있는 것들이 넘쳐난다. 전에는 단장한 채 작정하고 가던 곳을 이제는 매일매일 지나가니, 거리만큼이나 마음이 크게 바뀌었다.
"나 맨날 한강 걷는다."
독립하기 전에 동생에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그러나 같은 동네 사는 지인을 따라간 것 이외에는 내 의지로 한강에 가본 적이 없다. 걸으면 금방인 거리인데, '금방'이라는 이유로 미루다 보니 내 마음에서는 더 멀어졌다.
'가까운 사람한테 더 잘해야 해.'
살면서 많이 들었고, 나 또한 자주 하는 말이 떠올랐다. 이런 태도는 사람뿐만 아니라 생활 영역에도 적용 가능하다.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지금 사는 이 동네로 굳이 약속을 잡고 와서 열심히 둘러보았는데, 가깝다는 이유로 더 소홀해졌다고 느낀다. 동네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이 놈은 멀 때는 그렇게 열심히 구석구석 보더니 가까워지더니 무관심하다고 하소연을 할 만한 상황이다.
분명 동네에 대한 생각인데, 자연스럽게 사람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가까움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이 동네와 가깝게 지내기 위해서 지불하는 관리비와 생활비, 대출 이자처럼 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감정은 정량화가 힘들지만, 확실한 건 값을 매길 수 없는 그 감정을 위해 누군가는 아주 많이 노력 중이라는 거다.
'나랑 우리 동네에서 놀래?'
가깝다는 이유로 한동안 연락을 안 했던 이에게 연락해서, 언제든 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살펴보지 않은 동네를 돌아봐야겠다. 살면서 많은 것들과 멀어질 텐데, 내가 할 일은 지금 내게 가까이 있는 것들을 붙잡는 거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멀어질 수 있음'이라는 경고 문구를 마음에 새기고, 가까웠던 이들에게 연락을 해보기로 한다.
...
그냥 다음에 할까?
*커버 이미지 : Edvard Munch 'Two Human Beings. The Lonely On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