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의 삶은 나와 다를까
내가 사는 곳은 빌라다. 아파트에 살아본 적이 없고, 늘 빌라에서 살아왔기에 익숙한 환경이다. 어차피 독립하면서 아파트에서 살 자금이 없었기에, 내 선택지는 어차피 빌라였다. 다만 바라는 게 하나 있다면 엘리베이터였다. 본가에서 10년 넘게 살았지만, 4층까지 엘리베이터 없이 왕복하는 게 운동이 된다지만 귀찮은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택배를 시킬 때마다 죄인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애초에 너무 무겁거나 번거로운 건 주문을 안 하게 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금 집은 엘리베이터는 없지만 3층으로 한 층 낮아졌다. 본가보다 층고가 낮아서 체감상 훨씬 더 빨리 올라오는 기분이다.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도 좀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가게 되니, 분리수거도 더 즐겁다.
한 층에는 여러 세대가 살고 있다. 늘 창문을 열고 살지만 딱히 다른 집이 시끄럽다고 느낀 적은 없다. 다른 집이 문을 열고 닫는 소리 정도 이외에 내가 접하는 소음은 거의 없다. 운이 좋다고 느낀다. 오히려 집 바로 앞에 있는 파라솔 밑에서 하는 이야기가 더 선명하게 들린다. 편의점이 가까워서 좋지만 이런 애로사항이 생길 줄이야.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들어도 되나 싶을 만큼 사적인 이야기가 들릴 때도 있다. 옆집에서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분명 이 건물 안에는 여러 세대가 살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누군가를 제대로 마주한 적은 없다. 솔직히 말하면 딱히 마주치고 싶지도 않다. 다만 궁금하긴 하다. 똑같은 구조에서 살고 있는 이들이 나와는 어떻게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
가구 배치도 나와 다를 거고, 먹는 것도, 생활 루틴도 나와 다를 거다. 나는 의자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지만, 좌식으로 앉아서 생활하는 이도 있을 거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영양제를 먹지만, 일어나자마자 침구류의 머리카락을 떼어내는 이도 있을 거다. 나의 주식은 바나나와 계란이지만, 매일 하루 세 끼를 직접 해 먹는 사람도 있을 거다.
이웃끼리 교류를 해본 마지막 기억은 미취학 아동 시절이다. 옆집 사는 또래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부모님끼리도 교류가 많았다. 그 당시에는 대문이 늘 열려있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위험했을지도 모르는 풍경이다. 딱히 그때가 그립지는 않다. 왜냐하면 집은 가장 편해야 하는 공간이고, 그 누구도 의식할 필요가 없는 풍경이 내게는 필요하니까.
어쩌면 옆집에 사는 정체 모를 누군가는 한 건물 안에 자신과 자주 교류할 친구가 있기를 바랄 수도 있다. 사람의 성향은 모두 다르니까. 당근마켓에 물건을 팔려고 올리려고 보니 동네 사람들끼리 교류할 수 있는 메뉴도 존재했다. 동네 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글이 꽤 올라왔다. 만약에 만났는데 이상한 사람이면 어쩌려고 이런 글을 올리는 거지, 게다가 같은 동네라 마주칠 일도 많을 텐데. 내가 괜한 걱정을 하는 걸까.
서로 다른 시간에 잠들고 일어나겠지만, 이 건물에 사는 이들은 모두 같은 평수와 동일한 구조를 가진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다. 가끔은 이곳에서 내가 사고로 죽기라도 하면 누가 알까 싶을 때도 있지만, 공과금과 관리비 납부가 안 되면 어차피 누군가는 발견해줄 거다.
혼자서 무슨 생각을 하다 보면 '누군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까' 싶다. 나와 같은 구조에 사는 이들도 같은 걱정을 하고 있을까. 집 근처에 쓰레기봉투 살 곳이 꽤 멀다는 것에 힘들어할까, 보일러 소음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1층에서 올라오는 냄새를 그러려니 하려나. 다들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와 아주 가깝지만 알지 못하는 이부터, 나와 아주 멀지만 아주 가까운 사이의 사람들까지.
*커버 이미지 : Walter Kurt Wiemken 'Cross Section of a 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