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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Aug 03. 2021

나는 쥐의 젖을 가지고 있어

잘 보이는 위치에 있는 쥐젖

출근을 할 때는 교복처럼 집에 있는 검은색 티셔츠만 입고 간다. 가지고 있는 티셔츠에서 몇 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검은색이라, 헹거에 걸려 있는 검은색 티셔츠 중 하나를 입고 가면 된다. 굳이 출근이 아니어도 검은색 티셔츠가 나의 기본 의상인 경우가 많다.


아무 무늬도 없는 가장 기본의 검은색 티셔츠를 자주 입는다. 평소에 별생각 없이 입고 다니지만 엘리베이터 거울 등을 통해 보면 눈에 거슬리는 게 있다. 그건 바로 


쥐젖이다.


흔히들 쥐젖이라고 불리는 것이 보인다. 쥐젖이라는 이름이 왜 붙여졌는지 굳이 어원을 찾아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쥐젖처럼 생겼다. 쥐의 젖을 실제로 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는데, 내 몸에 난 이것은 볼 때마다 내가 쥐의 젖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게 만든다. 실제로 쥐의 젖을 가진 사람은 뉴스에 나와야겠지만, 세상에는 생각보다 쥐젖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위치도 좋지 않다. 딱히 깊게 파인 라운드티셔츠도 아닌데, 하필이면 내가 가진 쥐젖은 목과 쇄골 사이에 파인 부분에 양쪽으로 나있다. 쇄골에 물이 고일 것 같다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물을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일 정도의 얕은 깊이인데, 거기에 튀어나온 돌처럼 쥐젖이 나있다. 티셔츠를 입으면 무조건 양쪽의 쥐젖이 다 보이는 거다. 한쪽을 가리려고 하면 다른 한쪽이 더 선명하게 보이는 상황.


'연성 섬유종'이 정식 명칭이라고 한다. 발생 원인도 정확하지 않고 당뇨병, 임신 등과 연관 있을 수 있다는데 나는 둘 다 해당사항이 없다. 몸에 딱히 안 좋은 건 아니고, 보기에 거슬리는 게 문제다. 목 주변에 특히 많이 난다는데,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쥐젖을 처음으로 본 건 아버지의 몸에서다. 아버지의 목 근처에는 쥐젖이 몇 개 나있었다. 지금도 쥐젖이 유전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게, 어릴 적에 아버지의 쥐젖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유전도 전염도 아니라는데, 내 생애 첫 쥐젖은 아버지의 몸에서 발견했으니까.


아버지의 목 주변에는 쥐젖이 꽤 나있었고, 그걸 실로 묶어서 살이 곪게 한 뒤에 손톱깎이로 잘라내기도 했다. 위생적으로 당연히 좋을 리가 없다. 나도 처음으로 몸에 쥐젖이 생겼을 때, 목 뒤에 난 쥐젖을 계속 만져서, 거의 학대하듯이 뿌리 부분을 아플 때까지 눌러서 곪아서 떨어지게 만들었다. 무지해서 용감했던, 다시는 안 할 짓이다.


목이 꽉 조이는 티셔츠를 입고 싶지도 않고, 여전히 반팔을 입고 있다. 피부과에 가서 제거할 수도 있지만, 피부과에서 치료를 받고 나면 한동안 샤워도 못할 게 훤하다. 땀쟁이인 내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점점 커질 수도 있다는데, 몇 년 뒤에는 아무리 화려한 무늬의 티셔츠를 입어도 쥐젖부터 보이게 되지 않을까. 쥐젖으로 기억될 운명이라고 하니 괜히 슬퍼진다. 좀 더 그럴듯한 모습을 기억되고 싶었는데 쥐젖이라니.


오늘도 티셔츠를 입고 출근한다. 코로나 확진자가 아무리 늘어도 지하철에는 확진자가 많다. 지하철 유리에 비친 내 모습으로, 괜히 잘 보이지도 않는 쥐젖이 신경 쓰인다. 아무도 나를 안 보는 걸 알면서도 쥐젖을 가리고 싶다. 옷매무새를 살피다가도 유리에 비친 쥐젖과 눈이 마주친다. 


어릴 적 러닝셔츠를 입으면 목 주변에 쥐젖이 보이던 아버지의 모습도 떠오른다. 아버지, 집 떠난 아들은 아버지를 쥐젖으로 떠올린 답니다. 아버지를 안 닮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유전도 아닌 쥐젖조차 이렇게 비슷한 위치에 나다니. 아버지 닮았다는 말이 싫어서 안경도 잘 안 쓰고 다니는데.


날이 좀 풀리면 쥐젖을 제거해볼까. 그러면 신경도 덜 쓰이지 않을까. 쥐젖이 아니어도 아버지를 떠올리는 일은 내 삶에 있긴 할 거고. 요즘은 내 몸에서 숨기고 싶은 것들을 제거하거나 바꾸기보다,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게 진짜 성숙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성숙하지 못하다. 내 눈에 거슬리면 남 눈에 거슬릴 것만 같은 기분. 


언제까지 쥐젖을 달고 살지 모르겠다. 나의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니기를 바라는 쥐젖을 괜히 만지작 거려본다.



*커버 이미지 : Adolf Von Becker 'Sleeping Grey Cat And A R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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