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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Aug 19. 2021

8월이 어떻게 선선할 수 있어요?

선선한 8월이 반가워서

8월은 어떻게 생각해도 여름이다. 그냥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절정'에 해당한다. 9월은 가을이라고 하기에는, 8월의 여운이 남아서 여전히 여름에 더 가깝다. 9월에 가을 옷을 입겠다고 가디건이라고 꺼내 두었다가는, 찰나의 선선함 뒤에 더위를 느끼게 된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내게 8월은 완전한 여름이다. 여름이 가장 무르익고, 더위로 가득한 달.


내 멋대로 정의한 8월인데, 요 며칠 동안은 8월이 8월 같지 않았다. 선풍기를 강풍으로 틀고 나면 추울 정도여서 미풍으로 틀고, 에어컨을 하루 종일 틀었던 전과 달리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밖을 잠깐만 돌아다녀도 땀범벅이 되었는데, 이제는 땀이 확실히 전보다 줄었다. 더위에 허덕이면서 걷는 시간보다 바람을 느끼며 걷는 시간이 더 늘었다. 


지구가 아픈가. 선선한 건 분명 좋은데 아무래도 걱정이 되었다. 모든 계절에는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8월의 중순인데, 더위의 절정 대신 선선함이 느껴지니 지구가 괜히 걱정되었다. 평소에 지구 걱정을 열심히 하는 편도 아닌데, 8월의 선선함이 너무 어색해서 지구를 떠올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지구가 아니라 내가 이상해진 걸까. 나이가 들다 보면 무엇이든 가능해지고, 얼마든지 이상해질 수 있다. 내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은 걸까. 나만 8월의 선선함이 이상한가 싶어서, 괜히 주변 사람들에게 요즘 날씨가 좀 선선해지지 않느냐고 묻는다. 다행스럽게도 주변의 반응도 비슷하다. 내가 느끼는 것이 이상한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것도 의아한 일이겠지만.


갑작스러운 비는 여전하다. 꼭 외출할 일이 생기면 비가 와서 당황스럽다. 아끼던 신발도 언제 비를 맞을지 모른다. 비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으므로, 굳이 특정 신발을 아끼기보다 모든 신발을 평등하게 대하기로 한다. 비 올 때 신는 신발을 따로 정하지 않고, 적당히 순서를 바꿔가면서 신발을 신어 본다. 8월의 선선함을 신발장에 있는 모든 신발이 느낄 수 있도록.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날씨가 선선하다. 반바지 위에 긴팔을 걸쳐도 어색하지 않을 날씨다. 한동안은 반바지에 반팔을 교복처럼 입었는데, 이젠 슬슬 긴팔을 떠올리게 된다. 비라도 오는 날에는 25도 밑으로도 기온이 떨어진다. 아침부터 밤까지 늘 30도가 넘었다 보니, 25도가 얼마나 살기 좋은 온도인지 몸으로 느낀다. 25도는 숫자도 예쁘고, 기분도 좋아지는 온도다.


더위를 많이 타고 열이 많은 내게, 여름은 늘 힘든 계절이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르다 보니, 여름도 지나가고 있다. 독립하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8월이다. 이 무더위에 에어컨 요금이 얼마나 나올까 싶었지만, 예상보다 많이 나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느낀다. 재택근무를 비롯해서 주로 집에서 머물다 보니, 8월이 오고 가는 풍경을 제대로 느끼지는 못했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할 때마다, 바깥 온도에 대해 대략적으로 유추해볼 뿐이다. 8월의 선선함이 금세 집을 채운다.


"8월은 선선한 달이지".


내년에도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지구가 아프지 않고, 내가 건강한 상태에서 맞이한 8월이 선선하다면 나의 삶은 제법 버틸 만 해질 것 같다. 여름에 대한 두려움도 줄어들 거다. 내년 8월에 이 글을 다시 본다면, 그때의 온도는 얼마나 될까. 그때의 바람은, 선선함은 어느 정도일까. 나의 마음과 기분은 어떤 상황일까.


내년의 8월을 그려볼 수 있을 만큼, 더위와 싸우지 않고 생각할 여유를 주는 선선함이다. 8월은 더워서 힘들 거라는 냉소와 체념이 오히려 선선함을 더 반갑게 만든다. 시니컬한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긍정이라고 믿어본다. 8월의 선선함이 너무 반가워서, 내년에도 많이 보고 싶을 것 같다. 8월의 선선함이.



*커버 이미지 : Louis Loeb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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