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 Jul 18. 2021

같은 옷을 5번 연속으로 세탁기에 돌리는 경우의 수

지극히 개인적인 빨래의 역사

'새물내'라는 말이 있다. 순우리말로, 빨래 한 옷을 입었을 때 나는 냄새쯤의 의미다. 풀이로 보자면 이 말의 의미는 갓 빨래를 마친 옷의 좋은 냄새가 상상된다. 처음 이 말을 접할 때쯤 손빨래를 열심히 하던 시절이었다. 갓 스무 살이 되어서 지방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부끄럽게도 빨래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그전까지는 그저 엄마가 깨끗하게 준비해주신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고, 당연하다는 듯이 마련되어 있는 수건을 사용할 뿐.


그래서 그런지 새물내라고 하면 지금도 물비린내가 떠오른다. 세제도 없이 손빨래를 하고 나면 손은 손대로 물집이 잡히고, 빨래한 옷에서는 역한 물비린내가 났다. 당시에는 빨래하는 방법도 몰라서, 그저 물로 빨래를 빨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령도 없고, 그렇다고 엄청나게 열심히 탐구를 하던 시절도 아니고, 지금이라도 해서 딱히 많은 게 달라지진 않았다.


독립하고 나서 세탁기를 처음으로 제대로 사용해보았다. 독립할 때만 해도 빨래와 관련해서 여러 가지 옵션을 생각했다. '세탁특공대'나 '런드리고' 같은 세탁물을 맡기는 서비스를 이용할까도 생각해봤다. 아니면 빨래를 맡길 수 있는 동네 세탁소를 알아볼까도 했다. 오히려 집에 옵션으로 달려있는 드럼세탁기에 대해서는 딱히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설마 내가 부지런히 빨래를 할까 싶어서였다. 왕창 쌓아두고 세탁할 생각에, 속옷이랑 양말을 어마 무시하게 많이 사둘까도 싶었다. 앞에서 말한 손빨래 하던 시절에는 결국 빨래를 엄청나게 많이 모아서 빨래방에 한 번에 맡겼기 때문이다.


일단은 다이소에서 마음에 드는 빨래 바구니를 하나 마련해서, 수건부터 티셔츠까지 빨래가 생기면 바짝 말린 뒤에 빨래 바구니에 하나하나 모았다. 마찬가지로 다이소에서 산 드럼세탁기 청소 용품을 사서, 세탁기 내부도 깨끗하게 만들었다. 집 바로 앞에 빨래방이 있는데, 빨래를 분류해서 할 걸 생각하면 그 비용이 더 들 것 같아서 빨래방에서는 건조기만 써야겠다 싶었다. 좁은 집이라 빨래건조기를 널어두면 동선이 너무 협소해진다.


처음에는 빨래를 어떻게 분류하고, 드럼세탁기에서 어떤 코스를 사용해야 할지, 세제는 무엇을 써야 할지도 고민이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옷이 거의 다 검은색이라 색별로 분류할 일은 없다. 1+1으로 파는 거대한 세제와 섬유유연제를 샀는데, 섬유유연제 사용 관련해서 검색해보니 몸에 안 좋다는 말이 너무 많았다. 팔랑귀인 나는 섬유유연제를 안 쓰기로 하고, 중성 세제가 좋다길래 중성 세제도 1+1으로 파는 걸 샀다.  


땀이 많은 편인 데다가, 발레까지 주 3회를 하니 빨래가 늘 수밖에 없다. 수건과 속옷을 빨고, 양말을 빨고, 나머지 옷을 빠는 식으로 빨래하는 패턴이 생겼다. 처음에는 드럼세탁기에서 2시간짜리 표준 코스로 빨래를 했는데, 세 번에 나눠할 건데 이건 너무 시간이 걸린다 해서 30분짜리 쾌속 코스를 사용했다. 남들이 이미 그러고 있다는 건 나중에서야 알았다. 


먼저 한 빨래들은 건조대에 널어두고 나머지 빨래들이 다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모두 모아서 빨래방으로 가서 건조기를 돌린다. 건조기를 너무 강하게 하면 옷감이 상한다고 해서 중간으로 하는데 너무 안 말라서, 한 번 더 돌린 적도 있다. 30분에 6천 원인데, 이걸 두 번이나 돌리다니. 내 선택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 집에 딱히 손님이 없을 때는 그냥 건조대가 말릴까 싶어 진다. 건조대가 있는 풍경은 절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생활은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빨래법은 옷이나 수건 등에 이미 적혀 있었지만 나중에서야 제대로 쳐다보았다. 지인들에게 여름 이불을 선물 받았는데, 중성 세제와 함께 울 코스로 찬물에 빨고 나서 자연 건조시키라는 게 적혀 있었다. 찾아보니 이러한 방식이 가장 손상이 적다는 결론이 들어서 양말부터 속옷, 티셔츠 등 모든 것을 이 방식으로 빨래하기 시작했다. 


다만 다른 것들은 상관이 없는데 땀 흘린 티셔츠들에서 예전에 맡았던 물 비린내가 나는 것이다. 그래서 중성 세제 대신 좀 더 강한 세제를 써봤는데도 냄새가 안 빠진다. 탈수와 헹굼을 다시 한번 해본다. 그러나 냄새는 여전해서, 버리기로 결심했던 섬유유연제를 써본다. 이에 대해 동네 사는 지인에게 말하니 오염이 울 코스로 해결되기엔 그 정도가 심한 것 같으니 표준 코스로 해보라고 해서, 표준 코스로 해보았다. 그제야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빨래 완료의 냄새가 났다. 


아직까지 드라이를 맡길 일은 없다. 동네를 지나가면서 근처 세탁소들을 둘러본다. 드라이를 세탁소에 맡겨야 할지 크린토피아에 맡길지로 고민하겠지만, 이 동네 사는 지인의 의견을 비롯해서 여러 의견을 살펴보고 시행착오도 겪을 거다. 드라이할 정도로 옷이 더러워질 경우가 안 생기길 바라는 건 과욕일까.


삶의 루틴이 얼른 완성되기를 바라는 게 된다. 루틴이 거의 다 맞춰졌다고 생각했을 때 버리거나 수정해야 할 루틴도 생길 거고, 추가할 것들은 더 늘어날 거다. 빨래 루틴이 완성될 때쯤 전세 계약이 만료되어서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갈지도 모른다. 빨래방에 충전해둔 잔액을 다 쓰지도 못하고 새로운 루틴을 만드는 순간이 올까.


확실한 건 이제 더 이상 땀 묻은 티셔츠를 여러 번 세탁기에 돌릴 일은 없다는 거다. 여러 번 돌리느라 나간 전기세나 시간 등은 '시행착오 비용'이라고 퉁치기로 해본다. 



*커버 이미지 : Albert Anker 'Living Room Corner With Laundry Baske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