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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Aug 09. 2021

매일 먹는 사과도 내 마음 같지 않아서

속을 알 수 없는

매일 아침 사과를 먹는다. 아침 사과는 금이라는 말이 있다. 어디서 유래한 말인지, 사과의 정확한 효능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침에 사과를 먹는 것은 나의 오랜 습관이다. 내가 아이였을 때부터, 어머니는 늘 아침에 사과를 챙겨주셨다. 아침밥을 먹고 나면 당연하다는 듯이 어머니가 깎아주신 사과를 먹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게 당연하지 않음을 느꼈고, 사과 또한 마찬가지임을 느꼈다.


독립한 뒤에도 매일 사과를 먹는 루틴은 깨지지 않았다. 입주하는 날부터 편의점에서 사과를 사 먹었고, 며칠 뒤부터는 온라인으로 사과를 박스로 주문해서 먹었다. 여전히 사과 구매처를 확정하지는 못했다. 괜찮은 사과를 찾아서 도전 중이다. 아직은 온라인으로만 주문해서 먹는데, 집에서 가까운 시장에서도 조만간 사볼 생각이다.


지금은 아침밥을 먹고 나서 사과를 먹진 않고, 주로 사과와 바나나로 아침을 해결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이사 오고 나서 칼을 쓴 적이 거의 없다. 사과도 껍질째 먹는 사과를 주문해서 먹는다. 굳이 세척된 사과가 아니어도 사서 깨끗하게 씻어서 껍째 먹는다. 아침은 늘 바쁘기에, 여유 있게 사과껍질을 벗기고 잘라서 그릇에 놓고 먹을 시간이 없다. 나중에 손님이 온다면 그때쯤 생각해봐야겠다. 손님이 온다면 주로 저녁일 텐데, 저녁 사과는 아침 사과보다 몸에 안 좋다고 들어서 대접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전히 손님 타령을 하는 걸 보니, 나는 아직 나를 내 집의 손님으로 대접할 생각을 안 하나 보다. 내가 귀한 손님이 되어야 누군가를 대접도 하고 그럴 텐데.


이번에도 사과를 새로 주문했다. 마침 계란과 짜파게티가 다 떨어져서, 주문할 겸 온라인으로 집 근처 마트에서 주문했다. 세상이 좋아져서, 오전에 주문한 것을 저녁이면 받을 수 있다. 누군가는 고생을 해야 하기에, 좋아진 거라고 말하기에는 썩 유쾌하지 못하다. 시장에서 사과박스를 들고 오기엔 무거울 것 같은데, 다음엔 시장에서 소량으로라도 사봐야겠다.


사과의 겉모습만 봐서는 알 수 없다. 한 박스의 사과를 사도, 그 안에 있는 사과가 모두 균일한 것도 아니다. 먹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사과는 딱딱해서 아삭아삭해야 한다. 물컹한 사과로 하루를 시작하는 건 힘든 일이다. 힘이 빠지는 기분이다. 나의 치아로 단단한 사과를 깨물어 먹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건 보람찬 일이다. 조금 과하게 말해보자면, 사과의 질감이 하루의 시작을 결정짓는다.


같은 사과 박스 안에 있었으나, 어제는 단단했던 사과와 달리 물컹한 사과를 먹을 때가 있다. 별로라는 후기가 가득한 사과였는데, 내게는 단단하고 맛있는 사과가 존재한다. 먹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먹어야만 알 수 있다. 껍질의 색이나 흠이 난 정도가 주는 예상과 맛이 다른 경우도 많다. 먹기 전에는 그 무엇도 확정 지을 수 없다. 나의 아침을 여는 사과가 어떤 맛일지.


사과는 다른 과일을 변하게 만든다면서 별도 보관하라는 안내 문구가 사과를 주문할 때마다 보인다. 원리는 알 수 없지만, 사과가 강하다는 건 알 수 있다. 아침마다 강한 사과를 기대한다. 내 속에 들어가서 강한 성질로 도움을 줄 사과를. 단단함으로만 베어 물 수 있는 강한 사과를.


매일 아침마다 냉장고 과일 칸에서 사과를 꺼낸다. 만져봐서는 알 수 없다, 사과가 지닌 맛을. 씻으면서는 알 수 없다, 사과가 얼마나 딱딱할지. 깨끗하게 씻어서 입에 넣고 단숨에 베어 무는 순간에야 알 수 있다, 사과의 맛을.


마음은 사과처럼 생겼을 것 같다. 마주하기 전에는 알 수 없으므로. 사과도 모르는데 마음을 어떻게 알겠어. 알 수 없는 마음들과 함께한 하루의 끝에 새로운 사과를 고르고, 눈을 뜨면 알 수 없는 사과를 먹고 마음과 마주하기 위한 기운을 내본다.




*커버 이미지 : Pierre-Auguste Renoir 'Apple and P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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