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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Mar 07. 2018

좋은 사람인 척 하려고 말을 뭉갰어

이규호 '뭉뚱그리다'

누군가 과거의 연애에 대해서 물었다. 반사적으로 나온 몇 마디 말로 대답을 했다. 며칠 뒤, 내가 뱉은 말을 복기해봤다. 내가 뱉은 말은 '내 연애'에 대한 답이 아닌 '이상적인 연애'에 대한 답이었다. 내 연애에 대해 돌아볼 생각도 안 하고 방어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말을 대답으로 한 것이다. 좋은 사람과 좋은 연애를 했어. 감정이 담기지 않은 대답이다. 내가 했던 연애에도 감정이 부족했을 것이다. 이런 문답 하나에도 내가 들어있을 테니까. 


좋은 말로 방어가 안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는 뭉뚱그린다. 이렇고 저렇지만 결국 좋게 끝났어. 답은 정해져있다. 내 목표는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괄호가 생략되어 있다. 나는 '남들이 봤을 때' 좋은 사람이 될 것이다. 마음에 타인의 기준이 기본값으로 설정된 느낌이다. 내 마음의 '설정' 메뉴에 들어가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이젠 거기에 익숙해서 딱히 바꾸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다.


연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매 순간이 결과라고 생각했고 좀 더 나은 관계를 위해 갈등이 필요한 순간에도 좋게좋게 해결하려고 했다. 여기서의 '좋게좋게'는 해결이 아닌 포기 혹은 유예였다. 내가 내 솔직한 감정에 대해서 말하기를 포기하거나, 지금 터져야 해결될 갈등을 유예하는 연애의 결론은 명확하다. 관계와 감정에 있어서 건강한 적이 있었나. 나는 건강한 상태가 무엇인지 알고는 있나. 


이런 태도는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독이 된다. 올해의 목표에 대해 말할 때 독소를 빼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 삶에 깊이 박혀있는 독을 빼야 한다. 좋은 사람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건 표정이 아니라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항상 보이는 것에 혈안이 되어서 보이지 않는 것을 신경쓰지 않는다. 


넌 참 별로인 사람이구나. 이 말 한마디면 또 겁 먹고 모든 말들을 뭉뚱거리겠지. 사랑을 모른다는 말을 멋진 표현이라고 믿고 사용하겠지. 


더 이상 뭉뚱거리고 싶지 않다.



출처 : https://youtu.be/6fldEb_tL9w


꽃잎 휘날리던 눈부신 언덕
흐릿한 얼굴 흩어 지나가는 이름 두 자에
안부를 묻고 예쁜 기억만 남겨 두었지

흘러간 시간
사실과는 달리 그저 우리를 다시 서로를
좋은 사람이란
막연함과 평온 속에 가두고

아름다운 시절이다 푸르른 날들이다 뭉뚱그리고
오, 바보 같은 시절이다
외길 하나 돌아가기 멀어진 숲속이다

흘러간 시간
사실과는 달리 그저 우리를 다시 서로를
한때 감정이란
막연함과 허공 속에 가두고

아름다운 시절이다 푸르른 날들이다 뭉뚱그리고
오, 바보 같은 시절이다
외길 하나 돌아가기 멀어진

아름다운 시절이다 푸르른 날들이다 뭉뚱그리고
오, 바보 같은 시절이다
무엇 하나 되살리기에 늦은 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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