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록원 Apr 09. 2019

꿈이 단절된 세상, 자유롭지 않은 개인

<나의 작은 시인에게>

꿈이 단절된 세상, 자유롭지 않은 개인

*스포일러가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조그만 책상과 의자, 약간은 낡은 듯한 유치원 교실에 익숙하게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틀고 그 앞에 앉아 무료한 듯 바람을 쐬는 여자. <나의 작은 시인에게>의 첫 장면입니다.



평범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답답해 보이는 일상을 보내는 리사는 유치원 교사입니다. 리사의 일상 속 유일하게 신선한 것은 바로 '시' 수업. 하지만 시를 배우고 쓰는 것도 리사의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던 와중에 리사는 유치원 생 '지미'의 시를 짓는 천부적인 능력을 알게 되고, 그 후로 지미와 지미의 재능에 대한 애정과 노력, 그리고 집착을 보여주며 영화는 진행됩니다.


옮겨 적은 지미의 시를 읽는 리사


영화 속 리사의 일상은 가정과 유치원 - 시 수업으로 대비됩니다. 하지만 리사는 이 두 곳 모두에서 인정받지 못합니다. 유치원은 리사가 원하는 삶과 거리가 있는 일터일 뿐이며, 가정에서는 이제 대학생이 된 아이들과 대화가 단절되고, 남편은 리사의 예술에 대한 열망을 완전히 공감해주지 못합니다.


시 수업은 시에 대한 리사의 열망을 표출할만한 곳이지만 시 수업에서도 리사의 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일상을 벗어난 자유로운 예술을 꿈꾸지만 재능이 없는 리사는 어느 곳에도 온전히 속해 있지 않은 외톨이예요.


하지만 '지미'가 등장하면서 '유치원'은 새로운 곳이 됩니다. 단순한 일터가 아닌 '지미'가 있는 곳이죠.



지미는 리사가 원하는 모든 것의 상징입니다. 더 이상 시와 예술이 환영받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아쉬움, 자신의 마음과 예술에 대한 관심을 온전히 공유할 친구, 시에 대한 재능, 자신이 꿈꾸는 예술적 삶,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모습, 일상에서의 도피와 같은 모든 것을 지미를 통해 투영합니다.


리사는 지미를 동경하고, 집착하고, 위합니다.


지미에 대한 집착이 영화에 긴장감을 주기도 합니다. 대놓고 "여기서부턴 긴장 탈 거야!"라고 선전 포고하는 여느 스릴러와는 다르게, 집착하는 마음 때문에 리사가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전혀 모르겠는 불안함에서 오는 긴장감이요.



지미에 대한 리사의 감정은 직접적으로 묘사되고 전달되지만, 그 감정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감정들이 얽혀있습니다.


처음에는 지미의 시를 훔쳐 인정받는 리사의 모습을 보며 지미의 재능을 뺏고 싶은가란 생각이 들다가도, 진심으로 지미의 재능을 키워주고 응원하는 리사의 모습을 보면 아이러니해집니다.


이런 복합적인 감정 속에서 이상하게도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리사의 감정은 영화 전반에 깔려있는 '외로움'이었습니다.

 

지미의 시에만 관심을 표하는 시 수업 선생님
리사의 이야기를 공감하지 못하는 남편


사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 처음 든 생각도 예술 어쩌고 가 아닌, 뜬금없게도 "진정한 리사의 삶은 없었구나"였습니다.


아내와 엄마로서의 가정에서도, 일터인 유치원 교사로서도, 심지어 시수업에서도 리사의 마음과 관심은 공감받지 못합니다. 리사가 원하는 삶, 인정받는 삶은 실제 현실 속 리사의 삶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정에서는 자녀와 싸우다 "예술가 히피 인척 한다는" 소리를 듣고, 시수업에서도 서로의 시를 평가할 뿐입니다. 그 와중에 위에 언급했듯이 리사는 시 창작 재능이 뛰어나지도 않고요.


영화 내내 리사가 시에 관련된 얘기를 누군가에게 제대로 그리고 솔직하게 터놓는 장면은 오직 지미와 있을 때뿐이었습니다. 남편은 애당초 시에 관한 얘기가 안 통하고, 시 수업 선생님은 지미의 시에만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 리사의 모습은 어딘가 참 쓸쓸하고 외로워 보입니다.  


지미와 시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전시를 같이 가는 리사의 '편안해 보이는'  모습


이런 상황에서 지미는 이 답답한 단절된 일상에서의 돌파구가 됩니다. 나에게 없는 재능을 가진 아이, 다른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시'라는 공통분모, 시에 대한 순수한 마음.


어쩌면 지미에 대한 리사의 집착은 예술을 향한 집착을 넘어 자신과 교감할 수 있는 사람을, 그리고 온전하고 주체적이며 꿈을 꾸는 자의 생동감이 넘치는 '자신의 삶'을, 찾고 싶은 리사의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글쎄요. 이 영화는 정돈된 한 문장을 만들어 "이거다"라고 설명해주는 영화는 아닙니다. 입체적인 캐릭터 '리사'만이 있을 뿐입니다. 다만 영화의 끝 잘못된 집착의 발현으로 지미를 납치해 둘이서 시를 쓰며 살아갈 계획을 세운 리사가 계획이 틀어지며 울부짖으며 했던 대사가 있었습니다.


세상이 널 지워 버리려 해
결국 너도 나 같은 그림자가 될 거야.


지미에게 그리고 리사 자신에게 하는 말같이 들렸던 이 대사에서 리사의 쓸쓸함과 외로움이 참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대목에서 리사가 그토록 열망하는 예술가의 삶은 어쩌면 그림자가 아닌 진짜 '리사의 삶'에 대한 열망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강하게 들었습니다.


세상은 아니 누구도 리사의 꿈을 들여봐 주지도 않고, 재능도 없는 현실. 그림자가 된 것만 같은 무기력함. 심지어 가장 관심 있는 '시'라는 예술 자체가 비주류가 된 세상의 모습.


그런 현실을 살던 리사는 자신에게 없는 재능을 가진 '지미'가 시로 인정받는 삶을 사는 것을 누구보다 바랬을지도 모릅니다.


지미에 대한 집착으로 유괴까지 해버린 리사가 잡히고 나서, "I have a poem"이라고 얘기하는 지미의 말을 아무도 듣지 않는 모습에서 어쩌면 재능이 있든 없든 누군가의 '꿈'이 쉽게 외면당하는 단절된 세상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지미의 재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주변 사람들





<나의 작은 시인에게>는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상업영화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상업영화가 아닌 예술영화, 인디 영화 등과 같은 비주류 영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과 다르게 이 영화는 난해하거나 어렵지 않습니다.


비교적 친절하고 명확한 표현방법을 사용하며, 상징만을 나열하지 않아요. 그리고 일단 영화를 이끌어가는 '리사'역의 메디 질렌할(Maggie Gyllenhaal)의 연기는 관객들이 그녀의 감정선을 제대로 따라가도록 돕습니다.


잔잔하지만 어딘가 불안한, 단조로워 보이지만 입체적인 이 매력적인 영화를 추천합니다.







writer 이맑음

#브런치 무비 패스 5기

#나의 작은 시인에게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관람한 영화입니다

모든 사진의 출처는 네이버 영화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쿠아맨> 왜 사람들은 히어로물에 열광하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