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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록원 Dec 17. 2018

촌철살인 지망자의 고민

하고자 하는 것이 강박이 되어 나를 막을 때


나는 철학과 출신이다. 새로 들어오는 신입생 수가 비교적 적은 과 특성상 우리 과에 대해 공감할 사람이 많이 없겠지만, 철학과를 다니면서 한 가지 로망(?)이 생겼다면, 바로 간단한 논리와 말로 가장 핵심이자 허점을 찌르는 것이다. 일명 촌철살인 로망이다.


촌철살인(寸鐵殺人)
: 간단한 말로 남을 감동시키거나 약점(허점)을 찌름


철학사 관련 책을 잠깐만 들여다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여느 역사 속 학자들이 그렇듯 이름을 남긴 유명한 철학자들은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이론을 보여주며 기존 이론 혹은 사회의 허점을 찌른다. 기존의 생각 혹은 사회문화적 편견의 틀을 벗어난 의견을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의 논리적이면서도 창의적인 사고의 전개를 보다 보면 ”와 어떻게 이런 생각을?!”이란 생각도 자주 든다. 내가 알고 있던 개념 속에, 내가 무심코 흘리는 말속에 무수히 많은 가치와 편견과 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철학을 공부하면서였다.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틀을 알아채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이고, 그렇기에 “왜”라는 질문이 정말 힘을 발휘하는 학문이다. 4년 동안 배웠던 학문의 방향성이 이렇다 보니 유독 흘러가는 말속에 숨어있는 개념을 발견하고 그걸 집어내며 보다 논리적으로 의견을 전개하는데 특화되어있는 학생들을 비교적 자주 접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교수님들도 그렇다.


그들은 대부분 이 ‘촌철살인’을 잘한다. ‘촌철살인’을 잘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여러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동시에 나의 의견이 흔들리지 않으며, 그들의 말속 숨어져 있는 (대부분 무심코 당연하게 흘려보내는 개념이나 편견들) 오류들을 집어 보여줘야 한다. 것도 상대가 이해하기 쉽게.


촌철살인을 위한 말들은 보통 아주 ‘간단하고 명료하나’ 그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사람들은 사람이기에 당연히 쉽게 빠질 수밖에 없는 생각의 틀과 감정의 영향을 인지하고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어렵다. 사고가 넓고 깊어야 하며, 휩쓸리지 않을 줏대까지 있어야 하는데, 또 줏대가 너무 세서 자신의 감정이나 의견에 치우쳐서도 안 된다. 아니면 사서 고민하는 타입이 아니고 아예 쿨하게 할 말하고 사는 사람이라 (쿨한’척’하는 이기적인 사람 제외) 가장 기본적이고 옳은 것을 잊은 사람들에게 가장 기본적이고 옳은 것을 얘기하는 사람이던가.


왠지 이 눈매를 하고 허점을 찔러야 할 것 같은 느낌


서론이 길었는데, 그래서 이런 로망을 가지고 있는 나는 글을 쓸 때도 항상 “허점을 찔러야 한다!”라는 강박이 있다. 내가 허점이 찔렸을 때의 신선한 충격에 깊은 감명을 받아서인지 나 또한 그런 영향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글쓰기가 너무 어렵다. 뭔가 기존의 것과는 다른, 일상 속에서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깊은 생각 끝에 발견한 것들만 적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매주 글감을 고민하고, 그때마다 결국 매번 거기서 거기인 생각을 떠올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답답하기도 하고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글의 제목도 흔하지 않은, 신선하고 흥미롭되 글의 내용과 연관이 되는 그런 것!(임팩트 뽝!)이어야 할 것 같고, 결론도 항상 글을 갈무리함과 동시에 무언가 의미를 담고 있는 옹골찬 글귀여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이것들이 요새 들어 강박이 되어 나의 생각을 막는 틀이 되고 있다. 심지어 글을 위한 글을 쓰고, 글의 영향력을 따지다 보니 ‘내’가 없는 글이 되기 일쑤다.


최근 글쓰기에 대한 고민 때문에 ‘브런치’라는 어플에 관련 키워드를 자주 검색한다. ‘브런치’ 팀이 주최한 29CM의 카피라이터이자 작가인 이유미 작가님의 강연에서 작가님이 전하는 ‘에세이를 쓰기 위한 팁’ 중 이런 방법을 봤다. (출처 : https://brunch.co.kr/@brunch/138)


“툭, 끝나도 된다 : 결론에 대한 강박을 버릴 것”
“빨리 쓴다, 가볍게 쓴다 : 다음에 더 잘 써야지, 이번 글이 끝이 아니니까!”


많고 많은 글쓰기 조언 중에 이 글이 와 닿았던 이유는 이 조언이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자, 지금 스스로에게 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놔버리고, 방법이 아닌 태도를 바꾸기로 했다. 생각이, 생각이 아니라 고민이 될 때가 있다. 고민은 고민을 낳는다. 고민은 ‘나아가는 생각’이 아니라 무수히 되풀이되는 뫼비우스의 띠같이 반복된다. 심지어 반복되며 증폭되지만 정작 핵심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그 노선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머리만 아프다. 나아가고자 내가 찾은 방법들이 나를 막는 틀이 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 나의 경우처럼 말이다. 생각을 너무 하다 보면 모든 기준이 모호해지는 그런 단계가 있는데 지금 내가 그렇다. 그럴 땐 그냥 놔버려야지 뭐 어쩌겠어.


그리하여 모든 기준과 강박들을 잠시 내려두고, 허점을 찌르려 하지 않고, 그냥 내 소소하고 흔하디 흔한 휩쓸리는 생각과 감정들을 글로 남기기로 했다.


이렇게 내가 강박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준들을 없애는 연습을 하다 보면 또다시 새로운 태도 혹은 방법이 필요하다 느껴질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는 또 지금은 알 수 없는 것으로 나아가겠지. 그리고 확신이 든다. 그렇게 다 놔버리다 보면 또 나에게 ‘의미 있는’ 생각들이 찾아온다는 것을.


진짜 아이러니다. 하고자 하는 것을 놔버려야 내가 원래 하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요새 들어 자주 드는 생각인데 참 인생은 답이 없다. 한탄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정답이 없다. 답이 없다는 걸 알고도 답을 찾는 과정이 의미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게 지금 적으면서도 아이러니하다.


나의 새로운 노력들이 나에게 어떤 것들을 가져올지 기대된다. 머지않아 이 노력이 또 다른 틀이 되어 그 틀을 벗어나기 위해 다시 새로운 무언가를 찾게 될 수도 있다. 어찌 됐든 지금의 나에게 이 과정이 의미 있다는 것은 안다. 현재 나의 글은 정돈보다는 산만하더라도 이것저것 담아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내가 담아내려 하는 것들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 인생에도 글쓰기에도 확실한 정답은 없지만 이 과정들을 통해 나에게 딱 맞는 균형은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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