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방법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나도 요새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변했다는 게 느껴진다. 사회의 기준, 성과, 평가 등이 중요했던 과거와 달리, 자존감에 대한 에세이가 베스트셀러를 차지하고, 워라벨이란 말이 화제가 되었으며 그 이전에 이미 한철 지난 단어인 ‘욜로’라는 단어가 여러 매체를 휩쓸었었다. 단순히 “편하게 살고 싶어”가 아니라, 사회의 시선 남의 시선은 둘째치고 스스로조차 잃어버린 내 삶의 주체성을 찾고자 하는 욕망이 반영된 단어들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사실 우리는 아직까지도 ‘나’를 잘 모른다. 대학교 입시를 하는 학생들, 취업 시장에 뛰어든 대학생들, 그리고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괴리감과 허무함에 이직 상담을 하는 사람들, 인생의 큰 결정에 대해 고민하는 여러 사람들에게서 한결같이 발견되는 질문이 있다.
“원하는 게 없어요.”
그리고 인터넷에서 많은 공감을 얻은 누군가의 해답은 이것이었다.
“원하는 게 없어도 된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이 답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원하는 게 없어 불안해하는 이들이 원대한 목표가 있어야만 한다는 조바심 때문에 저 질문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모르는 데서 오는 답답함과 막연함은 생각 이상으로 불안하다. 당연히 평범하게 살아가도 된다. 하지만 그 결정을 진짜 내가 내렸을까는 다른 문제다. 나는 목표의 설정 기준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게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우리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법을 모르는지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이제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고 나의 삶을 살고 싶은데 나의 삶을 사는 방법을, 주체적인 삶을 사는 방법, 내가 어떤 것을 원하는지를 모른다.
주체적인 삶이 과연 많은 매체에서 보이는 것처럼 모든 현실적인 기준을 이겨내고 독창적인 나만의 삶을 꾸려나가는 것만을 의미할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주체적인 삶은 그냥 말 그대로 내가 선택을 하는 삶이다. 나의 선택이 현실에 타협하든, 그렇지 않든 ‘내가 선택한다면’ 그것이 주체적인 삶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내가 진짜 어떤 것을 원하는지 아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보다 안정된 삶일지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하는 삶일지는 나만이 안다. 사실 사람도 세상도 입체적이라 우리가 원하는 것은 보통 한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그 여러 가지 중에서 내가 원하는 두 가지 가치가 양립할 수 없을 때,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보면 둘 중 포기가 안 되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걸 선택하면 된다. 그리고 그걸 나만이 안다. 아무도 어떤 누구도 대신 선택해줄 수 없다. 답도 없다. 삶에 있어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심지어 시간에 따라 우선순위가 달라지기도 하기에 더욱더 계속해서 스스로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서 나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나를 들여다보는 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어”라며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평범하게 살아도 돼”가 아니라 다시 한번 자신에게 ‘제대로’ 물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 말을 나 자신에게도 계속해주고 싶다. ‘나’는 어디 안 간다. ‘나’는 언제나 항상 있다. ‘나’는 뿅! 하고 없어졌다 빰! 하고 나오는 그런 게 아니니깐.
이미 삶의 주체성을 찾은 사람들은 ‘주체적인 삶, 나다운 삶’의 가치는 정말 진심을 다해 알려주려 노력하지만, 상대적으로 나다운 삶을 위해 나를 들여다보는 법은 화두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들에겐 너무 기본으로 깔려 있는 거라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고, 우리 사회의 시선에 집단뿐만이 아닌 ‘나’까지 포함이 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아무튼 그래서 내가 효과를 본 나를 들여다보는 법을 몇 가지 적어보려 한다. 나에 대한 TMI 정보 몇 가지를 적자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주 오랫동안 주체적인 삶과 자존감에 대해 고민하고 소망해왔다. 나에게 없는 것이기에. 뭐가 부족해서라기보다 그냥 내 성향이 그랬다. 그렇기에 나를 들여다보는 방법이 나와 같이 주체적인 삶을 못 살고 있지만 주체적인 삶을 살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정말 흔하지만 정말 효과 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글이든 말이든 나에 대해 쏟아내다 보면 신기하게 생각이 정리되며 표면적으로는 나도 모르던 나의 모습들이 나온다. 다들 고민에 대해 친구와 얘기하다 나도 모르게 생각이 정리되며 답을 찾거나 혹은 내가 객관화되는 느낌이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일기도 그렇다. 일기를 쓰며 예기치 못한 답을 찾을 수도 있고, 그저 글로 표현하고 정리하는 그 과정 자체가 생각을 정리하고 나를 들여다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말로 내 생각이나 감정을 얘기하는 것도 도움이 되나, (해봤다. 독백 주저리주저리) 글의 가장 큰 장점은 다시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생각을 생각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글로 표현했을 때 좋은 점이기도 하다. 게다가 일기는 나만이 적고 나만이 읽기 때문에 쉽게 솔직해질 수 있다. 그렇기에 내가 쓴 글을 다시 읽는 것은 나의 성향, 생각, 가치관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나는 일기를 쓸 때 하루의 기록보다는 생각을 적는다. 고민이 있을 때 (격하게) 쓰기도 하지만, 고민이 없더라도 그냥 감정과 생각들을 적는다. 머릿속에서 한 뭉텅이로 뭉쳐있는 실타래 같은 생각들이 글로 한 올 한 올 풀어지는 느낌이다. 그 한 올 한 올 풀어진 글자들에 내가 들어있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해 머리가 아프다 하지만, 우리는 은근 시간과 공을 들여 제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이 있을 때 그 생각을 잡고 ‘제대로’ 해보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나에게 많은 것을 준다. 그 생각을 잡고 늘어질 때 글로 푸는 것도 일기 쓰기와 마찬가지 이유에서 좋은 방법이다.
우리는 보통 ‘걱정’이 있을 때 “생각이 많다.”라고 하지만, 걱정과 생각은 다르다. 생각을 많이 하다 보면 느껴지는 게 있다. 생각에도 층이 있다. 1단계 생각을 넘어서면 2단계 3단계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것을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생각이 깊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흔히들 말하는 무의미한 걱정이 꼬리를 물고 커지기만 하는 건 1단계에서 맴돌기만 하는 것이다. 기왕이면 “어떡하지”가 아니라 “그럼 어떡할까”를 적극적으로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그러다 보면 생각이 제자리 돌기가 아니라, 나아가고 깊어지는 것이 정말 느껴진다. 생각이 잘 나아가다 보면 나에 대한 생각도 보다 잘할 수 있게 된다. 생각하는 힘이 생긴다고 해야 하나. 이 생각의 대상이 ‘나’, ‘나의 삶’ 일 때는 말이 필요 없는 나를 들여다보는 좋은 방법이 된다.
내 삶에 대한 고민이 있을 때 우리는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구한다. 그런데 뻔한 말이지만 사람이 다 다르듯이 우리의 인생도 다 다를뿐더러, 결국 내 삶과 나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도 나뿐이다. 가까운 사람에게 나에 대해 묻는 것은 나를 객관화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는 하나 그럼에도 역시 한계는 있다. 아무리 나와 가까운 사람도 나의 모든 모습을 오롯이 알 수가 없다. 내가 아니니깐. 이건 어쩔 수가 없다.
그냥 나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포인트다. 맞춤법 맥락 이런 거 다 신경 쓰지 말고 핸드폰 메모 어플 켜놓고, 아니면 컴퓨터에 워드나 메모장 킨 다음에 내가 다른 사람에게 물었던 나에 대한 고민을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답해보면 된다. 끙끙대며 아무리 고민해도 모르겠던 나의 마음이 1인 2역으로 스스로에게 질문하니 대답을 한다. 진짜 꼭 해봤으면 좋겠다. 너무 좋다.
나만이 나를 가장 잘 알 수 있는데 나는 언제나 나였기에 스스로를 객관화하기가 힘들다. 너무 뻔하고 당연한 말을 가장 기본적인데도 뻔하고 당연하기에 쉽게 잊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자주 보지 못한다. 내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넘겼던 단어나 개념들에 대해 제대로 생각을 해보면 생각보다 그것들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더 나아가 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 알지 못하던 것들을 인지하고 생각하는 연습은 내가 인지하지도 못했던 나의 사고의 틀을 인지하고 넘어서도록 해준다. ‘나’도 마찬가지다. 분명 내가 ‘나’를 아는 데도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렇기에 이 방법은 같은 맥락으로 도움이 된다.
또한 습관적으로 자연스럽게 넘기는 개념들을 들여다보는 연습은 나 자신의 가치관이나 태도에 대해 생각할 거리도 제공해준다. 기본적으로 나를 알기 위해 뭐부터 질문해야 할지조차 모르거나 혹은 생각하는 연습이 필요할 때 가장 쉽게 생각의 깊이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라 생각된다. 나에게 질문을 하는 것만큼이나 말이다.
몇 가지 문장으로 예를 들어보자면
과거를 돌아보라
지금 이 순간을 보라
미래를 보라
이 다른 3가지 말이 사람마다 혹은 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것처럼 사실 어떤 말이 나에게 와 닿는, 그러니깐 울림을 줄 때는 그 말이 내가 원하는 말인 경우가 많다.
아무리 스스로에게 "네가 뭘 원하니"라는 말을 물어도 답하기 어렵다가도 이렇게 '나'는 나도 모르게 무의식에 나온다. 그 무의식을 놓치지 않으면 된다. 나에게 울림을 줬던 말은 내가 뭘 원하는지에 대한 거울이 되어준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원하며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자존감이 부족할 때는 주체성을 찾다 그것이 가끔 너무 강해져 자만이 되어버렸을 때는 또 같은 사람인데도 겸손을 찾는다. 자신을 지키고 싶어 인간관계에 회의적이 되었다가도 외로워져 다시 사람을 찾는다. 이게 사람이다. 그 변화만을 볼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다시 나를 들여다보자.
나에게 울림을 주는, 나에게 와 닿는, 내가 선택하는 말들을 곱씹어 볼 것.
writer 심록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