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빨간 하이힐
2018을 돌아보고 2019를 꿈꾸며
얼마 전 유튜브에서 영상을 봤다. 어떤 영상인지 다시 못 찾았지만 내용은 기억이 난다.
영상 속 유튜버가 18살 즈음에 30살을 꿈꾸며 가졌던 로망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로망은 바로 빨간 하이힐을 사서 신는 것이었다. 30살이 되어 이 로망이 다시 떠올라 빨간 구두를 사려 찾았는데, 빨간 구두를 파는 곳이 없어 결국 사지 못했다고 한다. 그걸 본 친구는 샀던 안 샀던 그걸 위해 노력하고 시도했던 그 과정이 재미있지 않았냐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단다. 그 생각은 그 사람의 지난 인생에도 적용이 됐다. 영상 속 유튜버는 무언가를 꿈꾸며 그 꿈을 위해 달려가는 매 순간이 결과에 상관없이 얼마나 값진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영상을 보고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나의 모든 순간들이 분명히 존재했고 그 순간들이 모이고 모여 나는 지금의 나로 흘러왔구나.
그러게. 내가 무료하게 보냈다고 생각하는 순간도, 기억도 잘 안 나 별로 였다 생각했던 순간들도, 혹은 잊고 싶거나 실패했다 생각했던 순간들도, 그 모든 것들이 나의 인생에 한 페이지 페이지로 쌓여왔구나. 특히 기억나는 구절이 있을진 몰라도 그 모든 순간들은 결국 인생이라는 책의 동등한 페이지들이구나.
우리는 인생의 많은 순간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좌절하고 실망한다. 슬럼프에 빠져있을 때 “그래도 이 노력이 무의미하지 않겠지”라고 생각하려 하지만 현실에서 달성하지 못한 목표를 눈 앞에 마주했을 때 그 좌절감을 떨쳐버리기 쉽지 않다. 나의 모든 과거의 시간들이 무의미해지는 듯한 좌절감.
그럼에도 기억해야 할 건 '노력해본 사람’만이 슬럼프에 빠지는 걸 넘어서서 그 모든 과정이 의미 있었구나라는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만의 '빨간 하이힐'을 위해 뛰어가고 나아가는 그 모든 과정은 '무언가를 위한'것임에도 그 자체로 의미 있다.
비슷한 경험을 나도 했었다.
고3 시절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대학 순위표에서 학생의 성적으로 갈 수 있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학교를 ‘너무나도 쉽게’ 추천해줬다. 추천의 근거는 한 장의 성적별 대학 순위표였다. 그 안에 정작 학생은 없었다. 나는 고3 때 표하나를 들고 나에게 대학 리스트를 추천해주던 담임 선생님의 말보다 내 마음에게 물어 선택을 했고 고민을 했고 노력을 했다. 노력을 했음에도 내가 1순위로 원하던 대학교를 가진 못했다. 하지만 원하던 목표는 아니었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나는 꿈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도 생겼다. 어찌 보면 실패를 겪었으나 나는 과정을 겪었고 결국 결과 또한 완벽하진 않았으나 만족스러웠다.
얼마 전에 엄마와 입시 관련 얘기를 하다 내가 별생각 없이 확고하게 한 얘기가 있었다. 내가 한 얘기인데 그 확신에 찬 나의 말이 다시 내 뇌리에 남았다. 이렇게 말했다.
내 선택으로 해낸 건
결과와 상관없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어
내가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는데도 나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어떤 확률과 기준을 따르는 것보다도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노력하는 과정이 얼마나 값진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됐든 나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 많은 것을 남기는지. 누가 알려줘서 안게 아니라 내가 겪어서 알겠다. 내 인생에 대한 선택과 그 선택에 따른 노력의 과정은 결과에 상관없이 정말 값지다. 왜 값진지 이유가 필요 없다. 그냥 알겠다.
우리는 내가 남긴 흔적들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지만,
내가 겪은 모든 순간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나의 삶이었다.
내가 했던 모든 노력들은
결과와 상관없이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나는 내가 꿈꾸던 것들을 다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로망이 많았으나 그 모든 로망을 실현하진 못했다. 그래서 스스로를 다그쳤고 스스로에게 아쉬웠다. 때론 이런 나 자신에게 실망했다.
그럼에도 나의 그 모든 순간들이 오롯이 내 인생의 한 페이지임을 떠올리며, 내가 이뤄낸 내 인생의 업적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냈으며 지난 순간마다 나를 조금씩 성장시켰다는 것도 알고 있자.
나의 모든 삶의 순간은 나다. 세상은 나 하나로 쉽게 바뀌지 않지만, 그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이 유독 있는 그대로 나에게 들어올 때, 조금 더 편안하고 호기롭게 나아갈 수 있는 것 같다.
더불어 내가 선택한 어떤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나아가는 그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나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지 기억해야겠다.
2018년을 돌아보며, 1년의 마지막 날이 여러 날 중 하나일 뿐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그럼에도 1년이라는 단위가 있어 나를 돌아볼 기회가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
2018년을 돌아보고 2019년을 꿈꾸며 나만의 ‘빨간 하이힐’을 다이어리에 적어봐야겠다. 다 해내지 못하면서도 계속해서 꿈꿨던 그 꿈들을 소중히 여겨 언제나 '로망 리스트'를 만들어 적어놨던 나의 흔적들도 들춰봐야지.
writer 심록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