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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neur Oct 14. 2021

불안과 함께 산다는 것

더디게, 느리게 괜찮아지기 1

나는 손 뜯는 버릇이 있다.


초등학교 1학년, 어딘가 불안한듯 손을 계속 뜯는 날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봤던 담임 선생님의 눈빛이 생생히 기억난다. 어린 나이라 그것이 일종의 자학 행위라는 걸 몰랐다. 특히 시험기간이 되면 더 심해졌다. 어느새 무릎, 책상 위에는 살 가루가 소복이 쌓여 있었다. 손가락엔 핏자국이 맺혀있었다. 불안이 남긴 흔적은 늘 그렇게 날 따라다녔고, 버릇이 돼 내 손은 엉망진창이었다.


보다 못한 엄마는 날 피부과로 끌고 갔지만 유의미한 치료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손 뜯는 버릇’. 검색해보니 애정결핍, 불안증세가 원인이란다. 결국 피부병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 외동딸로 커와서 그런지 애정결핍은 늘 있었던 것 같다. 역시 난 불안한 사람이 맞구나. 그렇게 ‘불안’이라는 틀 안에 날 끼워맞추기 시작했다. 매사에 걱정을 하고 불안해하니, 친구들조차 사서 고생한다느니, 걱정이 과하다느니 안타까워했다.


난 애정결핍이 있어서 타인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매우 강해. 자존감도 낮아. 그런데 남들에게 관심은 받고 싶어. 인정받고 싶어. 남들이 날 인정해주지 못하면 괴로워지고 불안해져. 그러곤 인간관계에 연연해하고 의존해. 그들이 결국 나에게 실망하고 날 떠날까봐 두려워.


내가 정의해오던 나다. 슬프게도 좋은 쪽보다는 나쁜 쪽으로만 내 자신을 정의해왔다. ‘나란 사람, 썩 나쁘지 않긴 한데... 하지만 단점이 더 많은걸’. 남들을 보며 장점을 찾아 칭송하기 바쁘고, 내 자신을 보면 부족한 모습만 보여 비난하기 일쑤였다. 심리상담 선생님께서 날 보며 ‘타인지향성’이 강하다고 말했다. 나는 늘 내가 아닌 타인을 우선순위로 두고 살아왔다.


왜 나는 내 인생에서 나를 지우며 살아왔을까? 무엇이 그렇게 타인을 의식하게 만들었을까? 난 왜 이렇게 고독하면서도 지독하게 사회적인 것일까?

난 여전히 나를 정의하는 일이 힘들다. 나의 장점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제일 어렵다. 어려워도 탐구하고, 올해는 기분 좋은 언어로 날 정의하고 싶다.


자아와 정체성을 찾는 긴 여정의 과정에서 1년간의 심리상담을 받고 정신과 약도 처방받아 복용 중이다. 범불안장애로 고통받지 않고 무뎌지고 싶어서였다.


1년 간의 숱한 상담을 거친 결과, 정신건강 관리에서 제일 중요한 주체는 결국 ‘나’ 라는 점을 깨달았다. 상담 선생님도, 정신과 의사선생님도 나의 불안을 완전히 없애줄 수는 없다. 내 감정과 매일 직접적으로 대면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치료에 임해야 하는 것을 매일매일 명심하려 한다. 이 여정의 끝이 어디일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노력이 쌓이다 보면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더디게, 느리게 괜찮아져도 괜찮다.



내 감정을 더 잘 헤아리고 싶어 브런치에 글로 다양한 감정을 기록해보려 한다.

어두운 주제의 글로 브런치를 시작하고 싶진 않았는데, 점점 밝아질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니 해볼만 한 것 같다.

핸드폰 속 작은 화면에서 만나는 공간이지만, 나의 브런치는 늘 밝고 따스한 볕이 드는 곳이 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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