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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neur Nov 22. 2021

약을 먹으면 정말 괜찮아지나요?

정신과 약을 향한 방어기제

정신과를 가기로 결심한 ,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매일  뒤척이며 괴로워하던 날들이 사라질 것만 같았고, 내가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라는  쉽게 받아들일  있을  같다는 생각에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날 이후 벌써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지 벌써 9개월이 흘렀다.

사실 9개월 동안 꾸준하게 매일 복용하지는 않았다. 약에 대한 열린 마음과 희망은 어느새 다시 새로운 불안으로 변해  옥죄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약에 대한 거부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던 것 같다.


그래서 가끔씩은  복용을 일부러 건너뛰었다. 회피형 성향답게 쓸데없이 주체적이고 싶어서, 무언가에 의존하기가 싫어서, 약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  실망할  같아서. 마치 내가 살아오며 사람과 이상, 목표, 꿈에 걸었던 기대가 물거품이  것처럼 약도 똑같이 나를 배신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약을 끊으면 안정적인 상태가 유지되지 않았다. 지난해 찾아온 공황 증세는 놀랍게도 금방 사라졌지만 미래에 대해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은 나를 잠식했다.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나를 어떻게든 살리고 싶어서, 지켜주고 싶어서  대신 일회성 상담과 글쓰기를 통해 해소했다. 당연히 완전하게 해결이 되지 않았다. 결국 잠을 뒤척이며 아침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눈뜨자마자 병원에 전화해 바로 가겠다고 이야기했다.


선생님, 약을 먹으면 괜찮아지는데 그게  진짜 모습이 아닌  같아요. 저는 평소처럼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사람인데 약이 그런 감정을 없애주잖아요. 약은 그냥 일시적으로 절 안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 아닌가요?  믿겠어요.”


선생님을 뵙자마자 약에 대한 불신을 털어놓았다.


그렇지 않아요. 과거에는 어땠어요? 안정적이었잖아요. 지금은  반대고. 현재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을 천천히 없애주면 안정감은 점점 축적될 거예요. 약에 대한 신뢰를 가지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선생님께서는 ‘플라세보 효과  항불안제와 항우울제에도 적용된다고 설명하셨다. 내가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 믿으면 약효가  좋아진다는 논리다.
그렇게 2주 치 약을 받고 다시 열심히 복용하니 다시 안정감을 되찾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안정감에  자신도 놀라 순간의 기분을 만끽했다.


“나는 괜찮아질 수 있는 사람이구나. 꾸준히 하다 보면 좋아질 거야.”


계속 주문을 걸었다. 거짓말인 줄 알았던 플라세보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괜찮다는 몸의 신호를 느끼자마자 다시  복용을 멈췄다. 선생님의 지시 없이 혼자 판단한 것이다. 그러자 역시나  좋아지기 시작했다. 불현듯 떠오르는, 이유 없는 불안을 깊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끝없이 분석하려고 했다.


내가  이런 불안을 느끼고 있지?”
모르겠어.”
나는 약이 없으면 정말  되는 사람인가?”
차라리 심리상담을 다시 꾸준하게 받아볼까?”
아니야. 답이 없는  같아. 죽을래.”
죽을 용기도 없잖아.”
“… 맞아. 이걸 그럼 평생 반복해야 ? 지긋지긋해.”


오만가지 생각이  뇌를 스치고 충돌하며 와르르 무너졌다.

결국 다시 병원을 찾았다. 선생님께서는 약을 꾸준하게 먹어야 한다며 몇 번을 강조하셨다.

이번에는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다시 복용해보려 한다.


*

누군가나 어떤 것에 의지하는 것이 익숙하고, 혼자 해결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 약도 마찬가지로 나에겐 경계대상이었다.


네가 뭔데? 약이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내 기분과 감정을 안정시켜줘? 희망고문 아닐까?

약을 복용하기 전의 희망적인 감정과는 모순되는 생각이 이어졌다. 방어기제가 발동한 것이다.


어쩌면 약을 먹고 괜찮아지는 과정은, 비단 약효가 들어 의학적으로 호전되는 것뿐만 아니라 ‘나에 대한 믿음 강해지는 단계인 것 같다. 나를 믿어야만 기본적인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그 여유와 약이 시너지 효과를 낸다면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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