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감정으로 회유하는 상사, 왜 위험한가

직장인의 얼굴들 : 감정은 위로부터, 책임은 아래로부터

by 딥핑소스

공기의 리더십과 감정의 설계

회의실의 공기는 언제나 일정했다.
A대표가 말을 시작하면, 말보다 분위기가 먼저 움직였다. 사람들은 그의 첫마디보다, 말하기 직전의 표정을 먼저 살핀다.


그는 명령하지 않는다. 대신 의도를 남긴다.


“나는 B본부장처럼 너희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하지는 않잖아?”


그 말은 문장보다 오래 남는다.
그의 말투는 부드럽지만, 공기는 단단하다.

누가 따뜻하고 누가 차갑게 대하는지를 결정하는 힘, 그 기준을 쥔 사람이 바로 그다.


A대표는 감정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감정의 구조를 설계한다.


위로는 권위로, 아래로는 온정으로.


팀장이나 본부장에게는 “분위기를 읽으라”라고 하고, 사원대리 주니어들에게는 “나는 너희 편이야”라고 말한다. 그 온도차가 조직을 움직이는 실제 동력이다.


그는 리더십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분위기’를 관리한다. 그 분위기 속에서, 판단은 감정에 종속되고 사람들은 어느새 감정을 읽는 능력을 성과처럼 사용한다.



칭찬으로 설계된 감정의 회로

A대표의 감정 회유는 가장 아래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그는 자신이 대단한 인재임을 알아봐 주길 바라지만 현실에서는 상급자들에게 피드백과 수정을 반복적으로 받는 사원·대리급의 인정욕구를 정확히 겨냥한다.


“요즘 너 정말 많이 성장했다고 들었어~.”
“너네도 2년 차쯤 됐으면 이제 웬만큼 잘하는 거 아냐?”


그의 칭찬은 개인의 성장을 인정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실제론 감정적 유대를 맺는 신호다. 칭찬을 받은 사람은 그 관계를 잃지 않기 위해 더 노력한다.


그 노력은 조직의 목표가 아니라, 대표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정서적 노동으로 바뀐다.


결국 A대표는 공식적 권한보다 더 강력한 비공식 영향력을 쥔다. 감정으로 인정받은 구성원들은 그에게 감정적으로 의존하고, 비판적 피드백이 필요할 때조차 말을 아낀다.


조직은 점점 관계 중심으로 돌아가는 회로가 되고, 감정적 친밀감이 판단을 대체하는 문화가 형성된다.


그의 감정은 단지 친절한 언어가 아니라, 구성원의 욕구를 정교하게 겨냥한 설계다. 인정욕구를 감정으로 채워주는 리더는 동시에 판단력을 마비시키는 리더이기도 하다.


감정이 동기의 언어로 쓰이는 순간, 조직은 감정에 반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감정의 정치학

A대표는 종종 본인 마음에 드는,

즉, A대표가 듣고 싶은 말을 잘해주는 주니어들과 감정적인 유대관계를 맺는다.


그는 그 관계를 통해 조직의 분위기를 읽고, 때로는 리더와 팀원 사이의 갈등이 생기면 구성원의 중요도에 따라 직접 중재자로 나서기도 한다.


“나는 팀장인 자네 입장도 이해해. 하지만 그게 정말 최선이었을까?”


그 말은 공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리더의 판단을 흔들고 팀의 질서를 재편하는 개입이다.


감정적 관계가 깊을수록, 대표의 말은 판단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는다. 그의 한마디는 객관적 논의의 방향을 바꾸고, 리더의 결정은 점점 불안정해진다.


결국 팀원들은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하는가’가 아니라, ‘누구의 감정을 먼저 살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대표의 공감은 갈등을 잠시 진정시키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갈등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건 침묵기억된 불편함, 그리고 리더십의 균열이다.


이런 감정적 개입은 겉으로는 따뜻하고 인간적이지만, 실제로는 리더십의 경계를 허문다.


리더는 권한을 잃고, 구성원은 판단의 기준을 잃는다.


모두가 서로의 감정을 살피며 일하는 조직은 결국 아무도 결정하지 않는 구조로 변한다.


감정이 리더십을 대체하는 순간, 조직은 더 이상 이성의 체계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감정은 판단을 흐리고, 공감은 책임을 희미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모호함 속에서, 조직은 천천히 방향을 잃는다.



감정 이후의 리더십

감정회유의 위험은 감정이 많은 상사에게서가 아니라, 감정을 기술로 사용하는 리더에게서 비롯된다.


그는 냉정한 명령 대신 따뜻한 말로 설득한다.


“나는 너희를 믿어. 너희도 나를 믿지 않니?”


그 말속에는 신뢰가 아니라 종속의 구조가 숨어 있다. 감정을 공유하는 순간, 논의는 사라지고 관계만 남는다.


그가 칭찬을 건넬수록, 조직은 책임의 위치를 잃는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늘 죄책감을 느낀다. 감정이 시스템의 중심이 될 때, 모두가 그 감정을 관리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다.


감정은 사람을 움직이지만,

그 감정이 기준이 되는 순간, 조직은 판단력을 잃는다.


그리고 감정으로 움직이는 조직은 결국 가장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에게 휘둘린다.


그래서 이런 상사들은 위험하다.


그들의 대책 없는 따뜻함은 구조를 마비시키고, 그들의 전략적인 칭찬은 관계를 고착시킨다.


감정으로 움직이는 리더는 조직을 안정시켜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든 구성원을 ‘좋은 관계의 인질’로 만든다.


감정으로 회유하는 상사는 순간적으로 불안을 달래지만, 문제를 해결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 온기 속에서, “이러니까 월급 받는 직장인인 거잖아”하는 자조 섞인 우리의 한탄과 함께 조직은 천천히 사고력을 잃어간다.


결국 감정을 관리하는 능력이 생존의 기술이 된 곳에서 리더십은 더 이상 리더의 것이 아니게 된다.


그것이 감정으로 리더십을 대체하는 순간이자,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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