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자기 매혹에 취한 상사, 팀은 어떻게 버틸까

직장인의 얼굴들 : 성과 독점이 남기는 신뢰의 균열

by 딥핑소스

직장에는 다양한 얼굴의 동료들이 있다.

그중에는 성과보다 더 달콤한 '자기 매혹'에 취해 팀을 병들게 하는 얼굴도 존재한다.


성과보다 달콤한 자기 매혹

직장에서 성과는 누구에게나 중요한 목표다.
하지만 어떤 상사는 성과보다 더 달콤한 것을 원한다.


바로 자기 매혹에 취하는 순간이다.


나는 회사의 대표에게서 이런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그는 한때 잘나가는 스타트업으로 회사를 세웠지만,

이제는 지분을 상당 부분 매각해 더 이상 절대적 오너는 아니다.
창립자이면서도 동시에 ‘월급을 받는 대표’라는 이중적 위치.


그래서인지 그는 회사의 성과를 자신의 성취로 포장해, 더 큰 자리와 개인적 브랜딩을 구축하는 발판으로 삼으려는 듯 보였다.



성과 독점의 순간

팀이 함께 만들어낸 프로젝트도 발표 자리에서는 종종 이렇게 변주됐다.


“이번 성과는 사실 내가 미리 네트워크를 다져둔 덕분이야.”

“이번에 OO브랜드 일을 하게 된 건 다 내가 지난번에 잘했기 때문이야, 그때 내가 얼마나 고생했었는지 너도 기억나지?”


말은 유쾌했지만, 그 순간 진짜 프로젝트를 리딩했던 실무 리더들의 표정은 씁쓸하게 굳어졌다.
몇 달간 밤낮없이 준비한 노력이 단숨에 지워진 듯했다.
웃음은 흘렀지만,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광고주 앞의 자기 과시

광고주와의 관계에서 에이전시는 종종 을의 자리에 선다.
그럴 때일수록 더 세심한 균형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과장하곤 했다.


“저희가 지금 업계 최고예요.”
“저희는 이거도 하고, 저것도 다 해봤기 때문에 이 시장에서는 사실 저희를 따라올 곳이 없어요.”


자신감 넘치는 말투였지만, 그 뒤에는 불안과 자존심이 얽혀 있었다.
누군가 자신을 낮추려 하거나 을의 위치에 두려 하면 금세 얼굴이 굳었다.
억지로라도 ‘내가 더 큰 사람’ 임을 증명하려는 듯했다.


광고주 앞에서 그는 화려해 보였을지 몰라도,
실무자들에겐 늘 리스크와 피로가 남았다.

그리고 그 미팅에서 외줄 타기 같이 아슬아슬한 그의 자기 과시가 빚어낸 민망함으로 붉어진 얼굴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었다.



끝없는 자기 확인과 칭찬 갈구

대표는 성과를 독점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일상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자기 확인과 칭찬을 갈구했다.


“나 오늘 말 되게 잘하지 않았어?”
“아, 거기서 내가 저렇게 말한 거 진짜 잘한 것 같아. 그렇지?”


잠시라도 대답이 늦어지면 그는 덧붙였다.

“빨리 잘했다고 칭찬해 줘. 내가 잘한 거 맞잖아.”


처음엔 농담처럼 보였지만, 곧 진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성과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동시에 끊임없이 확인받아야만 안도하는 사람.

그것이 내가 본 자기 매혹형 상사의 얼굴이었다.



팀에 남겨진 그림자

그러나 그 대가는 고스란히 팀이 떠안았다.
성과는 대표의 것으로 몰리고, 남은 건 실무자의 피로와 상실감이었다.
성과가 독점되는 순간, 신뢰는 균열되고 협력은 서서히 붕괴된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그림자 앞에서 팀은 무력하게 무너져야만 할까.

주저앉기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책은 무엇일까?



자기 매혹의 그림자에서 팀을 지키는 법

그렇다면 우리는 자기 매혹형 상사와 어떻게 일해야 할까.


첫째, 성과를 기록으로 남겨라.
회의록, 보고서, 프레젠테이션은 성과의 주체를 드러내는 객관적 증거가 된다.


둘째, 성과를 팀 단위 언어로 바꿔라.
“저희 팀이 함께 준비했습니다.”
“동료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습니다.”
공유의 언어는 자기 매혹에 빠진 상사가 쉽게 부정할 수 없는 선긋기가 된다.


셋째, 성과 독점을 구조적 리스크로 인식하라.
그들의 언행을 단순한 성격 문제로만 치부하지 말고,
조직 신뢰와 협력 구조를 해치는 심각한 위험 요소로 바라보아야 한다.

특정인에 대한 성격, 성향에 대해서 비난하는 것보다는 인과관계를 고려하여

회사 전체의 구조적 리스크로 인식하는 것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달콤 씁쓰름한 자기 매혹의 뒷맛

나는 가끔 묻는다.
자기 매혹에 빠진 상사들은 정말로 자신이 팀을, 조직을 이끌었다고 믿을까.

아니면 속으로는 그것이 허상임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자기 합리화하고 있는 걸까.


직장은 화려한 무대처럼 보이지만,
그 무대의 조명을 켜는 건 늘 이름 없는 손들이다.
그 손들이 외면받는 순간, 무대는 더 이상 빛나지 않는다.


성과를 나누지 않는 매혹은 결국 팀과 조직을 해친다.
자기 매혹은 달콤하지만, 그 뒷맛은 쓰디쓰다.


그리고 여기, 또 다른 직장인의 얼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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