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얼굴들 : 사과 뒤에 감춰진 책임의 공백
반복되는 ‘죄송합니다’의 풍경
직장에서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는 말 중 하나는
“죄송합니다”다.
처음에는 성실하고 겸손한 태도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그 말이 습관처럼 반복될 때, 사과는 더 이상 책임의 언어가 아니라 책임 회피의 방패가 된다.
내가 함께 일했던 A과장이 그랬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다시 해보겠습니다.”
태도는 순했고, 말투는 공손했다.
처음엔 성실해 보였지만, 다섯 번째부터는 그 말이 자동응답기 같은 공허한 사과로 들렸다. 실질적인 개선은 없었고, 같은 문제가 계속 반복됐다.
겉과 속이 다른 직장의 공기
A과장은 기본적으로 착하고 무난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아무도 회의 자리에서 정면으로 지적하지 못했다.
겉으로는 다들 별말 없이 넘어갔지만, 회의실 문을 나서면 분위기는 달라졌다. 대표와 본부장 같은 가장 높은 상급자들과의 사적인 자리에서, 대리와 사원들은 격의 없이 웃으며 농담처럼 불만을 쏟아냈다.
“또 팀장님한테 혼나서 죄송합니다로 끝났죠 뭐.”
“경험이 부족한 건지, 능력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어요. A과장님은 현장에서도 빠뜨리는 게 많으시잖아요.”
“A과장님이 사실 문서를 잘 쓰시는 것도 아니고, 아이디어가 좋은 것도 아니고요…”
이런 말들이 하급자들 사이에서 돌고 돌았다는 걸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겉으로는 순하고 착한 이미지를 유지했지만, 이미 A과장의 신뢰는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불안이 만든 야근의 굴레
“다시 해보겠습니다”라는 말 뒤에는 늘 끝없는 야근이 따라왔다. 나는 몇 번이고 “시간 안에 끝내라”고 지시했지만, 그는 애들은 다 퇴근한 사무실에 혼자 남아 낑낑댔다.
과장쯤 됐으면 자기 업무 시간을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 정해진 시간이 주어졌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모자라면 상사와 조율을 하든, 클라이언트와 협상을 하든 자신만의 주도적인 업무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매번 일을 제시간에 끝내지 못했고, 야근으로 밀어붙였다. 그렇게 밤을 지새우며 붙들었지만, 결과물은 여전히 엉성했다.
과도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붓고도 산출물은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는 흔적에 불과했다. 결국 프로젝트의 마무리는 팀원들이, 주니어들의 결과물에 대한 품질 관리와 최종 마무리를 위해 싫은 소리를 해야 했던 건 언제나 늘 내 몫이 되었다.
그 순간 ‘내가 왜 과장의 일을 대신하고 있나’ 하는 씁쓸함이 몰려왔다.
인사팀에서도 연락이 왔다.
“A과장이 너무 과하게 야근을 하는 것 같으니 주의시켜주세요.”
그때는 성실함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면담을 통해 내가 알게된 A과장의 진짜 속마음.
그의 야근은 헌신이나 조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부담감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자기 위로였다. 스스로 무언가 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얻으려 애썼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궂은일을 잘하는 착한 사람
경력직으로 입사한 지 2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믿고 맡길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주도적인 기획이나 전략은 불안해 맡기기 어려웠다. 그 대신 단순한 서류 정리나 막내 직원들이 기피하는 궂은 일은 묵묵히 해냈다.
그것만큼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관리자의 역할은 ‘좋은 사람’에 머물러서는 채워지지 않는다. 팀의 성과와 책임을 나누는 자리에서 그는 늘 공백을 남겼다.
다시 반복되는 사과
엉성한 결과와 마무리의 공백에도 그는 언제나 같은 말로 끝맺었다.
“죄송합니다.”
그 말은 단순한 사과가 아니라, “그래도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였다. 착한 이미지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는 순간, 팀은 점점 무너졌다.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혹시 나도 어떤 순간에는, “죄송합니다”라는 말 뒤에 숨은 적이 없었을까.
사과는 갈등을 잠시 가라앉히지만,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직장에서 신뢰는 사과의 횟수로 쌓이지 않는다. 사과 뒤에 따라오는 행동과 책임으로만 쌓인다. 사과는 순간을 덮지만, 책임은 미래를 만든다.
불안은 야근으로, 책임은 ‘죄송합니다’로.
이것은 단지 한 관리자의 문제가 아니다. 직장에서 너무 자주 반복되는 얼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