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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리 Feb 17. 2018

공유자전거가 바꾸는 도시의 모습

도시 경쟁력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부상하는 자전거 공유서비스

씨티뱅크와 나이키의 공통점


뉴욕의 씨티은행(Citi Bank), 포틀랜드의 나이키(Nike),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의 포드(Ford). 이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도시에 공유자전거를 후원하는 기업이라는 것. 민간기업이 브랜드의 이미지 제고와 사회적 공헌(CSR)을 위해 스폰한다는 점에서 워싱턴DC의 캐피탈바이크쉐어(Capital Bikeshare)나 시카고의 디비(DIVVY) 등 다른 도시의 공유자전거와는 좀 다른 노선이다. 하지만 언급한 도시들의 공유자전거 서비스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대행업체는 동일한데, 바로 미국 기업 모티베이트(Motivate)다. 씨티은행과 나이키, 포드 등의 기업들이 모티베이트 사와 손을 잡고 도시를 대표하는 기업의 이미지를 사는 것이다.

공유경제와 친환경 가치에 대한 인식과 함께 세계 각 도시에서 공공자전거 정책을 내놓고 나름의 브랜딩을 펼치고 있다. 서울시는 2016년 따릉이를 선보였고, 이는 2017년 서울시민이 뽑은 서울시 정책 1위에 뽑혔다. 일본의 소프트뱅크(Softbank)는 지난해 세븐일레븐과 손을 잡고 자전거 공유서비스 헬로사이클링(Hello Cycling)을 시작했는데, 2018년 안에 편의점 천여 곳에 5천대의 자전거를 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어마어마한 물량공세를 펼치고 있는 중국의 오포(ofo)는 현재 세계 250여 개 도시에서 천만여 대의 공유자전거를 운영하고 있으며, 올해엔 우리나라에도 진출해 부산시 남구 일대에 시범 운영한다. 덕분에 나도 자연스레 어느 도시를 여행하든 시티바이크를 유심히 살펴보는 편인데, 가장 인상 깊었던 포틀랜드의 공유자전거를 소개해본다.


RIDE PORTLAND, LOVE PORTLAND


나이키(Nike)는 힙스터들에게 사랑받는 도시인 미국 오레건주 포틀랜드에서 탄생한 브랜드다. '나이키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본사 건물을 비롯해 포틀랜드 곳곳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2016년 7월에 선보인 바이크타운(BIKETOWN)이다. 바이크타운은 나이키가 모티베이트, 그리고 포틀랜드시와 합작해 조성한 도시의 공유자전거 서비스다. 나이키가 전반적인 디자인을 맡음으로써 자연친화적이고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도시의 모습을 나이키다운 방식으로 보여준다.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바이크타운 정거장이 종종 눈에 띄는데, 나이키의 신발상자를 연상시키는 오렌지색이 전체적인 브랜드를 지배하고 있다.

포틀랜드 곳곳에 있는 100여 개의 바이크타운 정거장. 천여 대의 오렌지색 자전거는 도시를 활보하며 나이키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노출한다.

포틀랜드는 '미국의 자전거 수도'라고 불릴 정도로 자전거 통근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다. 자전거 이용량이 미국 전체 평균의 열 배에 이를 정도이며, 1인당 자동차 운행거리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 추세다. 이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매년 약 11억 달러를 절약하는 것이라 한다. 포틀랜드의 자전거 전용도로는 무려 500km에 달하고 관련 교통체계 또한 잘 정비되어 있는데, 특히 자전거와 자동차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표시인 쉐로우(Sharrow) 마크를 쉽게 볼 수 있다. 자전거로 통근하는 직원들에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기업도 있으며, 바이크스루(Bike-through) 패스트푸드 레스토랑도 볼 수 있다.

바이크타운은 웹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예약 후 이용할 수 있다. 1회 이용하는 싱글라이드(Single Ride)는 2.50달러로, 30분의 이용시간을 넘길 경우 분 당 10센트의 추가 비용이 든다. 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데이패스(Day Passes)는 12달러이고, 기본 이용시간은 180분이다. 연간회원 가입 시 한 달 이용료는 12달러로, 하루 90분에 한해 횟수 상관없이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포틀랜드시의 교통카드 한 달 정기권이 100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매우 저렴한 교통수단인 셈이다. (뉴욕시는 무려 121달러..)

회원가입과 상품 선택, 결제 등의 절차를 마치면 여섯 자리의 회원번호가 부여된다. 대여할 자전거의 디지털 키패드에 회원번호와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거치대에 연결되어 있던 잠금장치가 해제된다. 자전거를 이용한 후에는 같은 거치대에 반납할 필요 없이, 가까운 바이크타운 정거장에 반납하면 된다. 혹 목적지 근처에 바이크타운 정거장이 없다면, 일정 비용을 지불한 뒤 자전거 거치대가 있는 아무 곳에나 정차해두면 된다. 정거장이 아니더라도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어디에 자전거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틀랜드시와 오레건주 사이에 나이키 로고 하나면 충분하다.


시애틀의 실패, 그리고 중국의 과열경쟁


포틀랜드 친구집에 일주일 정도 머물다가 시애틀로 넘어갔다. 나이키 바이크타운에 큰 감명을 받았던지라 시애틀에서도 유심히 살핀 기억이 나는데, 밤이어서 그런진 몰라도 약간 방치되어 있단 느낌을 받았더랬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애틀에서 공유자전거는 사라졌다. 프론토(Pronto!)란 이름의 공유자전거 서비스는 모티베이트가 알래스카항공의 후원으로 2014년 10월 시작했고, 시 전역에 54개 정거장과 500여 대의 자전거를 배치했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한 사실이 있다. 시애틀이 '언덕의 도시'라는 것을. 언덕이 많은 지형 때문에 프론토 이용률은 현저히 낮았고, 결국 정부 예산 확보에 실패해 3년도 못가 철수했다. 시애틀은 현재 전기자전거 공유서비스를 운영하는 캐나다 기업 '베뷔겐(Bewegen)'과 앞으로의 운영에 대해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자전거가 무겁고 세련되진 않지만, 가파른 비탈길을 쉽게 오를 수 있으니 좋은 대안으로 본다. 

시카고의 DIVVY, 그리고 알래스카항공에서 후원했던 시애틀의 공유자전거 Pronto!

중국의 경우 공유자전거 열풍이 이미 한차례 크게 불었고, 그 열기는 현재진행형이다. 땅덩어리가 큰 만큼 샤오밍바이크, 딩딩바이크, 치치추싱 등 수많은 자전거 공유서비스가 출현했지만, 이 피터지는 춘추전국시대에서 살아남은 기업은 단연 투톱인 오포와 모바이크(Mobike)다. 이 두 기업은 중국 공유자전거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으며, 특히 2014년 베이징에서 시작한 선두주자 오포는 지난해 7월 알리바바(阿里巴巴)와 디디추싱(滴滴出行) 등에서 7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투자를 유치한 바 있다. 2015년 상하이를 베이스로 출범한 모바이크는 오포보다 한 발 늦게 시장에 뛰어들기는 했으나, 텐센트(腾讯)의 투자와 함께 1년여 만에 200여 개 도시에 진출하며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Shanghai, CHINA (Jun. 2017)

지난해 여름 상하이를 방문했을 때 내가 직접 체감했던 공유자전거 열풍은 실로 대단했다. 역시 대륙 스케일답게 모바이크의 오렌지색 자전거가 도시를 점령하고 있어 어디서든 손쉽게 빌려 탈 수 있었다. 모바이크는 정거장이 따로 없다. 특정 장소에 반납할 필요 없이 길거리 아무 데나 정차해 두고 가면 되는데, 이게 장점이자 단점이다. 이런 비거점형 공유자전거의 문제는 뉴욕타임스(NYT)에서도 지적했듯 유지 및 관리에 있다. 차도나 횡단보도 같은 곳에 방치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도난되거나 개인이 사유화하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충칭의 공유자전거 서비스 우콩(悟空单车)은 자전거에 GPS를 부착하지 않고 이용자의 양심에 맡긴 결과, 자전거의 90%를 도난당해 결국 지난해 6월 파산했다.

2017년 9월 6일 자 뉴욕타임스 기사. 당시 밀라노발 서울행 비행기 안에서 읽고 당시 모바이크 헤비유저였던 상하이 사는 김인애에게 보냈었다. 아무 데나 주차하지 말라고..


국내 인프라와 라이더십(Ridership)의 부재


중국처럼 자전거 공유서비스를 시작하기에 급급한 도시들이 많은데, 우리나라의 경우도 아직 자전거 도로나 관련 법규 등 인프라가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공유자전거를 운영하는 것은 우려되는 바다. 또한 자전거를 운전하는 데 있어 경각심과 조심성이 부족한 라이더들도 아직 많이 목격된다.

London, UK (Oct. 2017)

'자라니'라는 단어를 들어봤는가. 자전거와 고라니의 합성어로, 고라니처럼 언제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올지 모르는(일명 갑툭튀) 자전거 라이더들을 일컫는 신종 표현이다. 실로 교통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도로를 씽씽 활보하는 자전거 무법운전자는 고라니와 다를 바 없다.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서울시에서 자전거 사고로 85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71.7%에 해당하는 61명이 헬멧을 쓰지 않았거나 전방주시 태만 등 안전 운전 불이행으로 인한 사고였다고 한다.(2014-2016년 기준)

인구수보다 자전거 수가 더 많은 나라, 네덜란드 자전거 주차장의 위엄. 네덜란드는 자전거를 타면서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법제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자전거는 엄연히 차(車)로 분류된다. 일각에선 자전거 운전자의 면허제도를 도입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고, 자전거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 규정도 이르면 내년 마련된다고 한다. 관련 제도와 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해가야 하는 정부의 숙제도 있지만, 자전거 운전자들의 라이더십 함양 또한 매우 중요하다. 최근 모바이크와 손잡고 공유자전거를 도입하는 경기도 수원시는 올해 3월부터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자전거 안전교육을 진행한다. 모바이크 이용방법과 함께 자전거가 놀이기구가 아닌 '차량'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도로교통법을 준수하며 안전히 운전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실기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다.


도시를 변화시키는 공유자전거


공유자전거의 수요와 공급이 늘수록 도시는 그에 발맞춰 차츰 변화할 것이다. 비록 속도는 더디더라도 자전거 전용도로가 확충되고 법적 체계도 생길 것이며, 자전거 운전자에 대한 보험 적용도 확대될 수 있다. 또한 자동차나 대중교통의 접근이 어려운 지역의 골목상권이 활기를 띨 수 있고, 역세권처럼 자전거 정거장이 가까운 곳의 부동산 가치도 상승할 수 있다. 자전거가 활성화될수록 삶의 질은 높아질 것이며, 도시는 지속 가능한 발전과 녹색성장을 꾀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시의 따릉이도 이왕 생겼으니, 전시행정에 그치지 않고 서울시를 대표하는 생활교통수단으로 정착할 수 있길 응원한다. 매봉역 3번 출구 따릉이를 이용하며 매의 눈으로 지켜볼 테다.

서울시는 올해 33억 원의 예산을 투입, 따릉이 대여소를 1540곳까지 증설하고 자전거도로 확충 공사를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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